
아이가 겨우 잠든 걸 확인하고 조용히 방문을 닫았다.
딸내미 체온이 이불 사이로 느껴질 때까지 옆에 누워 있었다. 오늘따라 "아빠 같이 자자"를 열 번쯤 외쳤고, 그 작은 손이 내 팔을 꼭 쥐다 스르르 풀리는 순간 나는 살금살금 일어났다. 복도에 혼자 서서 핸드폰 화면을 켜는 그 순간의 고요함 — 집 안 어딘가서 냉장고 소리만 웅웅거렸다.
그리고 뉴스가 쏟아졌다.
세 개의 뉴스, 하나의 그림
오늘은 솔직히 좀 압도됐다. 거시경제 뉴스 세 개가 동시에 터졌는데, 각각이 아니라 서로 실처럼 연결된 하나의 큰 그림으로 읽혔다. 직접 정리해본다.
1. 호르무즈 — 그리고 세상이 바뀌는 소리
뉴스 첫 줄부터 심상치 않았다. 두바이 현물 원유가 배럴당 150달러를 넘었다는 소식.
이게 얼마나 이상한 숫자냐 하면, 같은 원유인데 걸프 현물은 150달러, 한 달 뒤 대서양 선물(브렌트)은 114달러다. 30달러 넘게 차이가 난다. 선물보다 현물이 비싸다는 건 지금 당장 걸프에서 기름이 물리적으로 사라지고 있다는 뜻이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하루 2,000만 배럴 차단. 전 세계 석유 소비의 20%다. IEA가 "역사상 최대 공급 차질"이라고 공식 선언했고, 규모는 1973년 오일쇼크의 7배다.
트럼프는 "48시간 내 개방 안 하면 발전소 때린다"는 최후통첩을 날렸다. 이란 측에서도 애매한 발표가 나왔지만, 솔직히 이게 깔끔하게 끝날 것 같지 않다. 협상 테이블에 앉아서 타협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베팅 시장 "4월 말 재개" 확률이 80%에서 30%로 뚝 떨어진 건 그냥 숫자가 아니다.
아이러니한 건, 이번 위기가 한국에게 오히려 숨겨진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지금 원전 15기가 가동 중인데 5월까지 6기를 추가 가동한다. 원전 가동률만 정상으로 올려도 LNG 소비를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 LNG 의존도 35~40%로 발전 부문 자체가 흔들리는 일본과는 그림이 다르다.
한 번 위기가 터질 때마다 반도체·조선·배터리·방산·원전으로 도약해온 나라가 한국이다. 이번에도 그 패턴이 반복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2. 머스크가 그린 그림 — 이건 칩 공장이 아니다
테라팹 설명회 내용을 읽다가 멍했다.
연간 1TW의 컴퓨팅. 전 세계 AI 컴퓨팅 출력이 지금 20GW다. 50배다. 삼성·TSMC·마이크론한테 "칩 살게요" 했더니 공급 확장 속도가 너무 느려서 직접 짓기로 했단다. 텍사스 오스틴에 테라팹 1호점을 짓는데, 한 건물 안에서 마스크 제작부터 칩 생산, 테스트, 재설계까지 원스톱으로 돌린다. 경쟁사 대비 반복 속도 10배. SpaceX·xAI·Tesla가 손잡고.
만드는 칩도 두 가지다. 옵티머스 로봇과 전기차용 엣지 추론 칩, 그리고 우주에서 방열판 없이 더 뜨겁게 가동되는 고출력 우주용 칩. 우주에는 연간 1,000만 톤 규모의 AI 위성을 쏘아올려 궤도에서 1TW 태양광 발전도 구축한다.
근데 거기서 끝이 아니다. 테라팹 다음 목표는 달에 전자기 매스 드라이버 설치다. 대기 없고 중력이 지구의 1/6인 달에서 로켓 없이 화물을 쏘아올리면 비용이 폭락하고, 1TW의 1,000배인 페타와트(PW) 규모가 가능해진다.
"미래에는 모든 것이 공짜가 될 것이다. 누구나 토성 여행을 갈 수 있는 세상이다."
오글거리는 것 같지만, 저 사람이 지금까지 해온 것들을 보면 그냥 웃어넘기기가 어렵다.
투자 관점에서 보면 칩 → 로봇 → 우주 → 태양 에너지 → 달 발사체로 이어지는 수직 통합 생태계다. 이 체인이 돌아가려면 메모리가 무조건 필요하고, 그 메모리는 SK하이닉스와 삼성이 만든다.
3. 중국도 메모리를 못 구한다
오늘 가장 구체적인 데이터를 본 건 중국 클라우드 이야기였다.
중국 클라우드 시장은 원래 알리바바·텐센트·화웨이가 피 터지게 싸우는 가격 경쟁 시장이었다. 그런데 올해 3월, 사상 처음으로 가격 인상 사이클이 돌기 시작했다. AI Agent의 토큰 사용량이 예상을 완전히 초과했기 때문이다.
텐센트 실적 컨콜에서 나온 말이 서늘했다. 메모리 공급이 몇 달, 몇 분기, 몇 년 단위로 이미 예약 완료라고. 중국 자체 메모리 회사 CXMT조차 내수 물량을 못 맞추고 있다. 텐센트는 AI 투자 재원 마련을 위해 자사주 매입을 줄일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스터디 모임에서 들은 말도 인상적이었다. 중국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AI 어시스턴트 쓰는 게 유행이고, 중국 내 맥북 중고가가 확 튀었단다. "1년 후엔 한국도 AI가 두부처럼 흔해질 것"이라는 예상.
아이 재우면서 나도 매일 핸드폰으로 이것저것 물어보고 있는데, 솔직히 이미 그렇게 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정리 — 오늘 읽은 것들은 하나의 그림이다
에너지 위기 → 공급망 재편 → AI 수요 폭발 → 메모리 부족 → 반도체 가격 상승.
이 흐름 속에서 한국이 가진 원전 버퍼, SK하이닉스의 HBM 경쟁력, 조선·방산의 구조적 수혜가 겹쳐있다. 세 가지가 동시에 작동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물론 무섭기도 하다. 호르무즈가 진짜 장기화되면 우리 일상도 달라진다. 기름값, 물가, 금리. 직장인 아빠로서 걱정 안 할 수가 없다.
근데 그게 또 투자를 해야 하는 이유다. 아이가 크는 속도보다 내 통장이 자라는 속도가 느리면 안 되니까. 위기가 터질 때마다 그 위기 속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 기업을 찾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
"기회는 다른 모든 사람이 포기할 때 찾아온다." — 워런 버핏 (Warren Buffett)
오늘도 핸드폰 내려놓고 자야겠다. 딸내미 옆에서 새우잠 자면서도 이 생각은 멈추지 않는다. 아빠가 더 열심히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