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건설의 진짜 출발점은 자동차 정비소였다. 정주영이 일제강점기에 인수한 '아도 서비스'라는 자동차 정비회사가 현대그룹 전체의 뿌리다. 가장 유명한 비화는 500원 지폐 속 거북선 일화다. 1971년 영국에서 조선소 건설 차관을 받기 위해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 지폐를 꺼내며 "한국은 영국보다 300년 앞서 철갑선을 만든 민족"이라고 설득해 4,300만 달러 차관을 따낸 것이다.
창업 스토리
1947년 5월, 정주영이 현대토건사를 설립했다. 자동차 수리대금을 받으러 미군 부대를 자주 출입하면서 토건업이 유망할 것임을 간파했다. "나는 무슨 일을 시작하든 된다는 확신 90%와 반드시 되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 10% 외에 안 될 수도 있다는 불안은 단 1%도 갖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밀어붙였다. 공업학교 교사 출신 기사 1명과 기능공 10여 명으로 시작한 첫해 매출액은 1,530만 원이었다. 1950년 현대자동차공업사와 합쳐 현대건설주식회사를 만들었지만 6개월 만에 6.25전쟁이 터졌다.
성장과 위기
한국전쟁은 위기였지만 동시에 기회였다. 동생 정인영이 미군 통역장교였던 덕에 미군 관련 공사를 거의 독점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UN군 묘역 참배를 위해 "파란 잔디"를 요구받자, 엄동설한에 트럭 30대를 동원해 낙동강 연안의 보리를 사다가 묘지를 완성했다. 1953년 고령교 복구공사에서는 부도 직전까지 몰렸다. 물가 폭등으로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정주영은 정비공장과 동생들·매제의 주택 4채까지 팔아 위기를 넘겼다. 진짜 반전은 1976년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산업항 수주였다. 9억 3,000만 달러, 당시 국내 예산의 절반을 넘는 금액이었다. 이후 중동 각국에서 170여 건·232억 달러 규모의 공사를 수행하며 '중동 건설 신화'를 썼다. 2000년대 '왕자의 난'과 워크아웃으로 최대 위기를 맞았지만 2006년 힐스테이트 브랜드를 론칭하며 재기했다. 2009년에는 31억 달러 규모 UAE 원전 공사로 한국형 원전 기술을 최초로 해외 수출하는 기록을 세웠다.
지금 뭐 하는 회사인가
현재 대한민국 건설업 빅5의 맏형 격인 기업이다. 주요 매출은 건축·주택 건설 부문에서 나오고 플랜트와 토목 사업이 뒤를 잇는다. 2025년 연간 수주 25조 5,151억 원을 기록해 국내 건설사 최초로 25조 돌파라는 역대급 실적을 달성했다. 아파트 브랜드 힐스테이트는 2년 연속 베스트 아파트 브랜드 1위를 차지했다. 2025년 6월에는 사우디 아미랄 석유화학단지 6조 5,000억 원 규모 수주로 중동 재진출에 성공했다.
투자 포인트
2025년 25조 수주라는 역대급 실적과 원전·중동 재진출 성공이 뚜렷한 강점이다. 외국인들이 한 달에만 861억 원을 순매수할 정도로 주목받고 있다. 다만 건설업 특성상 경기 변동과 프로젝트 리스크가 크다는 점은 함께 점검해야 할 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