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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일기] 트럭 한 대로 시작해 에어버스의 은인이 됐다 — 대한항공 79년 종목 공부

by 우노디야 2026.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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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의 시작은 의외로 초라했다. 1945년 인천에서 트럭 한 대로 시작한 개인 보세화물 사업자였다. 대한항공을 키운 한진그룹은 우리나라 좌석버스의 원조이기도 하다. 1961년 주한미군 통근버스 20대를 사서 서울-인천 구간에 한국 최초 좌석버스를 운행했다.


창업 스토리

조중훈은 1920년 서울 서대문구에서 태어나 휘문고보 1학년 때 아버지 사업이 망해 학교를 그만둬야 했다. 광복 직후 인천에서 '한진상사'라는 간판을 달고 운송업을 시작했다. '한진'은 '한민족의 전진'이라는 뜻이다. 집무실 한 켠에는 '수송보국'이라는 휘호를 걸어두고 평생 수송 외길을 걸었다. 결정적 전환점은 미군과의 계약이었다. 1957년 첫 미군 수송계약 7만 달러를 따낸 뒤 연평균 300%씩 성장했다. 베트남전쟁 때는 퀴논항 1억 5,000만 달러 군수물품 운송권까지 따냈다.


성장과 위기

항공업 진출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1969년 박정희 대통령이 적자 덩어리 대한국민항공을 넘겼다. 조중훈은 "밑지면서도 해야 하는 사업이 있다"며 인수했다. 1973년 중동전쟁 때는 유가가 치솟아 연료비를 못 내면 운항이 중단될 상황이었다. 새로 들여온 점보기를 담보로 내놔야 할 만큼 다급했다. 5,000만 달러가 필요한 조중훈은 프랑스 은행장에게 직접 도움을 요청했다. 극적인 사실은 대한항공이 에어버스의 은인이라는 점이다. A300 여객기를 유럽 밖에서 최초로 도입해 성공적으로 운용하면서 에어버스가 전 세계로 팔려나갔다. 조중훈은 프랑스 정부에서 레지옹 도뇌르 2등급 훈장을 받았다. 코로나19 때는 여객기를 화물기로 개조하는 역발상으로 수익을 냈다.


지금 뭐 하는 회사인가

2024년 12월, 아시아나항공 합병이 최종 승인됐다. 시가총액 약 10조 원, 161대 항공기로 117개 도시에 취항하는 글로벌 메가캐리어가 탄생했다. 2024년 2분기 화물 운임이 전년 대비 35% 급등했다. AI 투자 급증·전쟁으로 인한 항공 수송능력 감소·전자상거래 확산이 맞아떨어진 결과다. 아시아나 마일리지는 항공탑승분 1대1, 비탑승분 1대0.82로 전환되며 10년간 별도 보관도 가능하다.


투자 포인트

아시아나 합병으로 국내 항공업계 독점 구조가 완성됐고 인천공항 허브 전략도 공고해졌다. 화물사업이 현재 실적을 이끌고 있다. 다만 항공업은 유가·환율·글로벌 경기에 민감하고 화물사업도 경기 사이클을 타는 변수가 있어 함께 점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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