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둥 60%에 철근이 없었다 — GS건설 '순살 자이' 사건의 전말
아파트 기둥 32개 중 19개. 비율로 따지면 60%다. 그 기둥들에 철근이 없었다. 2023년 4월 인천 검단 신도시에서 지하 주차장 슬래브가 무너졌을 때, 국토교통부 조사 결과가 공개되자 인터넷은 즉시 한 단어를 만들어냈다. '순살 자이'.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프리미엄 아파트 브랜드가 하루아침에 조롱의 대상이 됐다.
그런데 이 회사, 사실 따지고 보면 이게 처음이 아니다. 2013년에도 거의 망할 뻔했다. IMF 때도 살아남았다. 위기가 반복되는데도 회사는 계속 살아있다.
창업 스토리 — 테니스장에서 시작한 건설사
GS건설의 뿌리는 1969년 12월 '락희종합개발'이다. LG그룹의 전신인 락희그룹에서 갈라져 나온 회사다. 처음엔 건물을 짓지 않았다. 부동산 매매, 빌딩 임대, 그리고 1974년엔 판교 테니스장을 세웠다. 오늘날 시총 1조원대 건설사의 첫 번째 자산이 테니스장이었다.
1975년 럭키개발로 이름을 바꾸고, 서울역 앞 삼주빌딩을 인수해 임대업을 본격화했다. 심지어 광고대행업까지 손을 댔다. 1977년 해외건설 법인을 별도로 세우고 중동 붐에 올라타면서 비로소 '건설사'다운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GS가 LG에서 분리된 사연도 흥미롭다. LG그룹은 구씨 일가와 허씨 일가가 6대4 지분으로 60년 넘게 동업한 회사였다. 2004년 허씨 일가가 GS홀딩스를 출범시키고 2005년 1월 공식 분리됐다. 이름도 그때 LG건설에서 GS건설로 바꿨다. 그런데 'GS'가 무슨 약자냐고 물으면, 공식적으로는 아무 뜻도 없다. Good Service, Global Spirit, Grow with uS 등을 갖다 붙이기도 하지만, 정식으로 정해진 건 없다. 심플하다 못해 허허롭다.
한 가지 더. GS건설은 GS그룹 지주사의 자회사가 아니다. 허창수 회장 등 허씨 일족이 직접 지분을 들고 지배하는 구조다.
성장과 위기 — 자이의 탄생, 그리고 두 번의 벼랑 끝
2000년대 GS건설을 빅5로 끌어올린 계기는 역설적으로 IMF 외환위기였다. 대형 건설사들이 줄줄이 쓰러지던 시절, GS건설은 저가 수주를 줄이고 수익성에 집중하며 버텼다. 살아남은 자가 강자가 됐다.
그리고 2002년, '자이(Xi)'가 나왔다. 그리스 문자 14번째 글자 Ξ(크사이)의 영어식 발음이다. 'eXtra Intelligent'의 약자라는 설명도 붙었다. 아파트 이름에 그리스 알파벳을 쓴다는 발상 자체가 당시엔 꽤 파격이었다. 배우 이영애를 내세운 광고가 터졌고, 자이는 순식간에 프리미엄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자이 론칭 직후 7,800억원이던 주택 매출은 2010년 2조 3,500억원으로 세 배 이상 불었다.
그런데 2013년 뒤통수를 맞았다. 해외 플랜트 사업에서 대규모 손실이 터진 것이다. 1분기 영업손실만 5,355억원. 연간으로는 9,354억원 적자였다. 주가는 한때 20만원에 육박했던 것이 1만원대까지 떨어졌다. 고점 대비 90% 이상 하락이었다. 2014년 5,520억원 규모 유상증자로 겨우 숨통이 트였다.
5년 후인 2018년, 반전이 왔다. 창사 이래 처음으로 영업이익 1조원을 넘겼다. 그리고 또 5년 후, 검단이 무너졌다.
2023년 4월 인천 검단 아파트 신축 현장 지하 주차장 슬래브가 붕괴됐다. 기둥 32개 중 19개, 60%에 철근이 빠져 있었다. 사고 직후 GS건설이 현장에서 자사 로고를 서둘러 가리자 여론은 더 나빠졌다. 전면 철거 후 재시공 비용만 5,500억원. 영업손실 3,879억원. 2013년 이후 10년 만의 적자였다. 국토부는 법정 최고 수위인 8개월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다.
재무 압박은 알짜 자회사 매각으로 이어졌다. GS이니마는 스페인에 본사를 둔 수처리 전문기업으로, GS건설이 2012년 인수한 뒤 10년간 매출이 288% 늘었다. 연간 수백억 원 순이익을 안기던 효자였다. UAE 국영기업 TAQA에 약 1조 7,000억원에 매각한 이유는 하나였다. 재무구조를 당장 개선해야 했기 때문이다.
지금 뭐 하는 회사
2025년 잠정 실적 기준 매출 12조 4,504억원, 영업이익 4,378억원. 전년 대비 영업이익은 53% 넘게 늘었다. 플랜트 부문이 88% 성장하며 실적을 견인했다. 흑자 복귀는 분명한 신호다.
다만 핵심인 건축주택 부문 매출은 18% 줄었다. 2024년 1만 6,000세대, 2025년 9,000세대 분양 물량을 고려하면 2026년 건축·주택 매출은 추가 감소가 예상된다. 순차입금비율도 2021년 16%에서 현재 60%대로 올라있다. 체력이 회복 중이긴 한데, 아직 예전 같지는 않다.
아파트 브랜드 자이는 2024년 22년 만에 로고를 바꿨다. 'eXtra Intelligent'에서 'eXperience Inspiration'으로. 그런데 바뀐 로고에서 'I'가 두 개에서 하나로 줄어들자 "로고에서도 철근 뺐냐"는 말이 나왔다. 웃프지만 정확한 비화다. 그래도 2025년 아파트 브랜드 선호도 조사에서 종합 1위를 다시 차지했다. 브랜드 인지도 91%, 주택 10채 중 1채는 자이라는 통계도 있다. 사람들이 욕하면서도 산다는 게, 어쩌면 가장 강한 브랜드의 증거일지 모른다.
2026년 도시정비사업 수주 목표는 8조원이다. 시공능력평가 도급순위 5위를 유지 중이다.
투자 관점에서 보는 포인트
GS건설은 위기와 회복을 반복해온 회사다. 2013년 해외 플랜트 손실, 2023년 검단 붕괴. 두 번 다 대규모 적자를 냈고, 두 번 다 흑자로 돌아왔다. 회복 탄력성은 증명됐다.
긍정 요인이 있다. 플랜트 부문의 구조적 원가 개선이 이익률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자이 브랜드 인지도 91%는 경쟁사 대비 압도적이다. 도시정비사업 8조원 수주 목표는 중기 외형 성장의 기반이 될 수 있다.
리스크 변수도 분명하다. 2025년 분양 부진에 따른 건축주택 매출 감소가 2026년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순차입금비율 60%대는 재무 여력이 크지 않다는 신호다. 하청 노동자 사용자성 인정에 따른 파업 리스크와 공사비 상승 가능성도 업계 전반의 변수로 부상했다. 애널리스트 컨센서스 목표주가는 2만 5,050원으로, 2026년 분양 회복이 실적 개선의 핵심 관전 포인트다.
욕하면서도 산다 — 그게 가장 강한 브랜드의 증거
테니스장에서 출발해, 두 번의 대규모 적자를 견디고, '순살 자이'라는 조롱 속에서도 브랜드 선호도 1위를 유지하는 회사. 자이, 플랜트 회복, 도시정비 수주. 이 세 개의 키워드가 GS건설의 다음 챕터를 결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