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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일기] 230만 쪽짜리 서류로 FDA 허가 받았다 — 12년 적자 끝에 매출총이익률 93.7%

by 우노디야 2026.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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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만 쪽짜리 서류를 FDA에 들이밀고 허가를 받아낸 회사

2020년 6월, 공모주 청약에 31조 원이 몰렸다. 역대 최대 기록. 기관 경쟁률만 835대 1이었다. 상장 첫날 시초가는 공모가의 두 배로 출발했고, 이틀 연속 상한가를 찍었다. 공모가 4만 9,000원이 넉 달 만에 26만 9,500원까지 갔다.

그런데 이 회사, 상장 직전까지 12년 연속 적자였다. 2024년에야 처음으로 연간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적자 기업이 31조를 끌어모은 이유가 뭘까. 그 이유가 이 회사의 진짜 스토리다. R-Toolbox


창업 스토리 — 혼자 남은 회사

SK바이오팜의 뿌리는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SK그룹이 대덕연구원에 신약 연구팀을 꾸린 게 시작이었다. 당시 국내 제약업계 분위기는 복제약 일색이었다. 실패 확률이 낮고, 빠르게 수익을 낼 수 있었으니까. SK는 다른 길을 골랐다. 혁신 신약. 10~15년을 태워야 하고, 5,000개 후보물질 중 1~2개만 살아남는 그 길. 한화도, CJ도 신약 개발에 도전했다가 손을 들었다. SK만 남았다.

처음부터 전략이 있었다. 글로벌 빅파마들이 이미 판을 깔아놓은 당뇨·비만 시장은 피했다. 대신 중추신경계(CNS), 그중에서도 뇌전증을 타깃으로 잡았다. 임상 참여자 수를 줄일 수 있고, 패스트트랙 같은 빠른 허가 루트를 노릴 수 있는 분야였다.

2002년, 최태원 회장이 직접 방향에 도장을 찍었다. 2030년에 바이오를 그룹의 중심축으로 세우겠다는 선언이었다. 2002년에 2030년을 얘기한 것이다. 28년짜리 계획. 그리고 2011년 4월, SK그룹 내 Life Science 사업부문이 독립 법인으로 분리되며 'SK바이오팜'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성장과 위기 — 거절의 역사가 만든 결과

첫 번째 고비는 2008년이었다. 초기 개발한 뇌전증 치료제 '카리스바메이트'는 존슨앤존슨에 기술을 수출했고, J&J가 최종 출시 직전 단계까지 끌고 갔다. 그런데 엎어졌다. 수년간의 노력과 돈이 증발하는 순간이었다.

보통 이때 포기한다. 그런데 최태원 회장은 오히려 그해에 미국 현지법인 SK라이프사이언스의 R&D 조직을 강화하고 업계 최고 전문가들을 채용했다. 이 판단이 결정적이었다. 이때 키운 SK라이프사이언스가 훗날 세노바메이트 임상을 주도하고, FDA 허가 이후 미국 직접 판매까지 맡게 된다.

두 번째 반전은 임상 2상 때였다. 세노바메이트 데이터가 유의미하게 나오기 시작하자 글로벌 빅파마들의 러브콜이 쏟아졌다. 기술을 팔면 편하게 로열티를 받으며 살 수 있었다. SK는 거절했다. 후보물질 발굴부터 임상, 허가, 판매까지 전 과정을 직접 하겠다는 '엔드 투 엔드' 전략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 결과가 2019년 11월에 나왔다. 세노바메이트(미국 제품명: 엑스코프리)가 FDA 판매 허가를 받았다. 대한민국 최초의 독자 개발 혁신 신약이었다. 이 허가를 받기 위해 FDA에 제출한 서류가 230만 쪽이다. A4 한 장 두께를 0.1mm로 치면 230미터 높이. 당시 조정우 대표는 "2조 원에 약간 못 미치는 비싼 수업료를 냈다"고 했다.

상장 이후에도 쉽지 않았다. 허가는 받았는데, 미국 직접 판매망을 새로 깔아야 했다. 영업 조직과 마케팅 비용이 먼저 투입됐고, 2020~2023년까지 영업손실이 이어졌다. 2024년 연결기준 매출 약 5,476억 원, 영업이익 963억 원을 기록하며 첫 연간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설립 후 12년 만이었다. R-Toolbox


지금 뭐 하는 회사

2025년 매출 7,067억 원, 영업이익 2,039억 원. 전년 대비 영업이익이 111.7% 증가했다. 세노바메이트의 미국 매출은 6,303억 원으로 전년 대비 43.7% 늘었다. 차입금은 0, 현금 3,095억 원을 들고 빚 없이 앉아 있다. Chicodeza

매출원가율은 2022년 15.3%에서 2025년 6.1%로 낮아졌고, 2026년 1분기에는 매출총이익률 93.7%를 기록했다. 제약 바이오 업계에서 이런 수익성 구조는 흔하지 않다. R-Toolbox

세노바메이트의 미국 월간 총 처방 수(TRx)는 2025년 12월 4만 7,000건에 도달했고, 2026년 3월에도 4만 7,000건에 근접했다. 신규 환자 처방 수(NBRx)는 2026년 1분기 기준 분기 평균 최대치를 기록했으며, 3월에는 처음으로 2,000건을 넘어섰다. R-Toolbox

지역 확장도 빠르다. 북미는 직접 판매, 유럽·일본·중국·라틴아메리카 등에는 9개 파트너사와 기술 수출 계약이 돼 있다. 2026년 3월에는 중국에서 시노팜이 '이푸루이'라는 이름으로 출시했다. 유럽은 이미 15개국 출시 상태에서 올해 8개국을 추가할 예정이다.

제형도 넓히고 있다. 알약을 삼키기 어려운 환자들을 위한 경구 현탁액 제형을 FDA에 허가 신청했고, 소아·청소년 환자군으로 투약 연령을 확대하는 임상도 진행 중이다. 차세대 먹거리로는 방사성의약품(RPT) 파이프라인 3개를 개발 중이며, 인실리코 메디슨과 AI 기반 CNS 신경면역 분야 공동 연구개발 협력 계약도 체결했다. 세노바메이트로 번 현금을 RPT와 AI 신약 개발에 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다. Chicodeza


투자 관점에서 보는 포인트

SK바이오팜의 가장 특이한 점은 국내 바이오 기업 대부분이 기술을 팔아 일시적인 수익을 올리는 구조인 반면, 이 회사는 미국 시장에서 직접 판매하는 구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기술이전 수익은 한 번에 끝나지만, 직접 판매 구조는 처방이 늘어날수록 매출이 누적된다. 처방 기반이 넓어질수록 매출이 누적되는 구조인 만큼, 2026년에도 매출 레버리지 효과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a.flat

긍정 요인이 있다. 세노바메이트의 PGTC(전신 강직 간대 발작) 적응증 확대 임상 3상이 계획보다 빠르게 완료되며 약효·안전성을 확인했다. 소아 연령 확장 임상도 진행 중이다. 한국·중국·일본 NDA 제출이 완료됐고, 이르면 2026년 내, 늦어도 내년 상반기 이익잉여금 전환이 가능할 전망이다. R-Toolbox

리스크 변수도 있다. 세노바메이트 매출 비중이 전체의 98%에 달한다. 단일 제품 의존도가 극도로 높은 구조다. RPT와 AI 신약 개발이 성과를 내기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미국의 약가 규제 강화나 경쟁 약물 등장 가능성도 중장기 변수다.


30년을 버텨서 만든 구조

한화도 CJ도 포기한 길에서 혼자 남아, 빅파마의 러브콜을 거절하고, 230만 쪽짜리 서류로 FDA 문을 두드렸다. 그 선택들이 지금 매출총이익률 93.7%라는 숫자로 돌아왔다. 세노바메이트, 직판 구조, RPT 선순환. 이 세 개의 키워드가 SK바이오팜의 다음 30년을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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