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문배달 고졸 소년이 시가총액 13조 게임왕국을 만든 사연
한국 모바일게임 시장을 이야기할 때 넷마블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넷마블의 창업자 방준혁은 개발자가 아니다. 코드 한 줄 짠 적 없는 '비즈니스맨'이다. 김정주(넥슨), 김택진(엔씨)이 전형적인 개발자 창업자라면, 방준혁은 그냥 장사꾼이다. 좋은 의미로. 그리고 넷마블은 방준혁이 처음부터 세운 회사도 아니다. 망해가던 '아이팝소프트'라는 게임사를 인수해서 이름을 바꾼 것이다.
창업 스토리 — 신문배달 소년의 연속 실패와 인수
1968년 서울 출생. 초등학교 때 학원비를 마련하려고 신문배달을 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중소기업에 취직했다. 최종학력 고졸 중퇴. 이 흙수저 소년이 월급을 모아 창업을 시도한다.
1998년 인터넷 영화사업 실패. 1999년 위성인터넷 사업도 실패. 연속 두 번. 자금은 바닥났다. 그 와중에 사외이사로 몸담고 있던 게임사 아이팝소프트가 경영 위기에 빠지자, 방준혁이 직접 인수해버린다. 2000년, 직원 8명에 자본금 1억 원. 회사 이름을 넷마블로 바꾸고 새 출발을 선언했다.
그리고 2002년, 방준혁은 한국 게임 역사에 조용한 혁명 하나를 일으킨다. '부분유료화' 모델을 한국 PC온라인게임 시장에 처음 도입한 것이다. 게임은 무료로 하되 아이템에 돈을 쓰게 하는 방식. 처음 적용된 게임은 '캐치마인드'였다. 지금은 당연하게 여기는 이 구조, 방준혁이 처음 설계했다.
성장과 위기 — 팔고, 돌아오고, 올인하고
2004년, 방준혁은 잘나가던 넷마블을 스스로 팔아버린다. CJ그룹에 지분 21.7%를 800억 원에 넘겼다. 창업 3년 만에 업계 2위까지 올린 회사를 판 이유는 간단하다. 더 큰 그림을 그리려면 대기업 인프라가 필요했다. CJ 체제에서 넷마블은 2005년 '서든어택'으로 또 한번 점프했다. 동시접속자 25만 명, 연간 최고 매출 600억 원.
그런데 2006년, 방준혁이 건강 문제로 경영에서 물러난다. 그가 떠난 뒤 서든어택 개발사가 넥슨에 넘어가면서 배급 계약이 끊겼다. 넷마블의 최대 효자 게임을 하루아침에 잃은 것이다.
2011년, 방준혁이 돌아왔다. 나중에 그는 "어머니 상중이었지만 자식이었던 넷마블의 숨이 깔딱깔딱할 때 허겁지겁 달려왔다"고 표현했다. 그는 "엔진만 고장났을 뿐이다. 5년 안에 매출 1조 원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당시엔 허풍처럼 들렸다.
방준혁은 모바일에 올인했다. 모두의 마블, 몬스터길들이기, 세븐나이츠가 차례로 터졌고, 2014년 4분기에는 엔씨소프트 매출을 추월했다. 그리고 2016년 12월, 결정적인 한 방이 나왔다. '리니지2 레볼루션'. 출시 첫 달 매출 2,060억 원. 한국 모바일게임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숫자였다. 2017년에는 14년간 게임업계 1위를 지키던 넥슨을 밀어냈다.
그해 5월, 넷마블은 코스피에 상장했다. 공모로 2조 6,600억 원을 조달했고, 시가총액은 13조 원을 돌파했다. 신문배달 소년이 코스피 시총 13조 기업의 오너가 되는 순간이었다.
2018년 방준혁은 친척 동생인 방시혁 대표의 빅히트에 2,014억 원을 투자해 지분 25.71%를 확보한다. BTS 소속사의 2대주주가 된 것이다. 2020년에는 코웨이 지분 25.08%를 1조 7,400억 원에 인수했다. 게임 회사 대표가 정수기·공기청정기 렌탈 1위 기업을 통째로 사버린 것이다. "구독경제"를 키우겠다는 복안이었고, 업계는 나중에 이를 '신의 한 수'라고 불렀다.
지금 뭐 하는 회사
넷마블은 2022~2023년 각각 영업손실 1,087억 원, 685억 원을 내며 암흑기를 보냈다. 그러다 2025년 연결 기준 매출 2조 8,351억 원, 영업이익 3,525억 원을 기록하며 연간 기준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전년 대비 매출은 6.4%, 영업이익은 63.5% 증가했다. Sokai
4분기 해외 매출은 6,143억 원으로 전체 매출의 77%를 차지했다. 연간 기준으로도 해외 매출은 2조 704억 원으로 전체의 73%에 달했다. 지역별로는 북미(39%) 비중이 가장 컸고, 한국(23%), 유럽·동남아(각 12%), 일본(7%) 순으로 집계됐다. Sokai
스핀엑스(소셜카지노), 잼시티(캐주얼게임), 카밤(서구권 RPG) 등 해외 자회사들이 전체 매출 대부분을 만들어낸다. '나 혼자만 레벨업: 어라이즈'가 글로벌 히트를 치며 캐시카우 역할을 하고 있다.
2026년에는 8종의 신작을 순차적으로 선보일 계획이다. 1분기에는 스톤에이지 키우기·일곱 개의 대죄: 오리진, 2분기에는 솔:인챈트·몬길: STAR DIVE, 하반기에는 나 혼자만 레벨업: 카르마·샹그릴라 프론티어 등을 출시한다. 에프앤가이드 기준 2026년 연간 매출 전망치는 3조 485억 원으로 사상 첫 매출 3조 원 돌파 가능성이 제기된다. SokaiSokai
주주환원 정책도 강화했다. 2025년 회계연도 기준 지배주주순이익의 30% 수준인 718억 원(주당 876원)의 현금 배당을 시행하고, 기존에 취득한 자사주 4.7%를 전량 소각하기로 결정했다. 2026년부터 2028년까지 주주환원율을 최대 40% 범위 내로 확대할 방침이다. Irnote
현재 진행형인 리스크도 있다. CJ ENM이 2024년 넷마블 지분 5%를 매각하면서, 텐센트가 방준혁 의장(24.31%) 다음으로 지분율이 높은 2대주주(17.52%)로 올라섰다. 두 사람의 격차는 약 6.79%포인트. 향후 주요 주주들이 지분을 더 팔 경우, 텐센트가 최대주주가 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게 업계의 시선이다.
투자 관점에서 보는 포인트
긍정 요인이 분명하다. 적자 탈출 후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는 '회복 스토리'가 수치로 증명됐다. 해외 매출 비중 73%는 원화 약세 국면에서 환율 수혜를 받을 수 있는 구조다. 코웨이와 하이브라는 비게임 자산도 기업가치를 다양하게 해석할 여지를 준다. PC 자체 결제 확대에 따른 수수료 절감은 구조적 비용 개선 요인이다.
리스크 변수도 선명하다. 텐센트의 지분 확대 가능성은 지배구조 불확실성으로 남아있다. 모바일게임 산업 특성상 신작 흥행 여부에 실적이 크게 흔들린다는 점은 상수다. 2026년 8종 신작이 모두 흥행하기는 어려운 만큼, 핵심 타이틀의 성과가 한 해 실적을 결정하는 변수가 된다. 방준혁이라는 창업자의 존재감이 워낙 강한 회사라, 그의 의사결정 방향이 곧 회사의 방향이라는 점도 투자 시 고려해야 할 오너 리스크다.
장사꾼이 게임 1위를 만들고, 정수기 1위를 사들이고, 역대 최대 실적으로 돌아왔다
코드 한 줄 못 짜는 남자가 한국 게임 부분유료화를 발명하고, 직접 만든 게임 없이 게임 1위를 먹었다. 두 번 적자를 내고 역대 최대 실적으로 돌아왔다. 해외 매출 73%, 신작 8종 파이프라인, 코웨이·하이브 비게임 자산. 이 세 개의 키워드가 넷마블의 다음 챕터를 결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