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롯데백화점 본점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의 이름은 '롯데백화점'이 아니었다. 1979년 명동과 소공동 사이에 들어선 그 건물의 첫 이름은 '롯데쇼핑센터'였다. 누가 보아도 백화점인 건물이 9년간 쇼핑센터라는 이름표를 달고 운영된 배경에는 당시 서울 도심 대형 시설 신규 출점을 규제하던 정책이 있었다. 규제가 풀린 1988년이 되어서야 '롯데백화점'이라는 이름이 공식화되었다.
'롯데'라는 이름의 기원도 흥미롭다. 일본어도 영어도 아닌,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샤롯테(Charlotte)'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껌을 팔던 회사의 이름이 독일 고전 문학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창업주 신격호라는 인물의 결이 단순한 장사꾼과 달랐음을 보여주는 단서다.
창업 스토리
1921년 경남 울산에서 5남 5녀의 맏이로 태어난 신격호는 1942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뱃삯을 치르고 남은 돈이 83원이었다. 친구 자취방에 얹혀살며 우유 배달을 하는 동시에 와세다 고등공업학교 야간부 화학과를 다녔다. 배달량이 늘어나자 스스로 아르바이트를 고용해 관리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배달부로 시작했으나 이미 사업가의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었던 셈이다.
1944년 일본인 투자자의 눈에 들어 커팅 오일 공장을 세웠으나 폭격으로 전소되었다. 신격호는 돌아가지 않았다. 투자해준 은인에게 빚을 갚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비누와 포마드 크림을 만들어 재기에 나섰다. 전쟁 후 폐허 속에서도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원한다는 것을 꿰뚫어 본 판단이었다. 1년 반 만에 빌린 돈을 전액 상환하고 은인에게 집 한 채를 선물했다.
그 다음 눈에 들어온 것이 껌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군이 들여온 껌이 일본에서 폭발적으로 팔렸다. 신격호는 시중의 껌을 직접 씹으며 분석하고 약제사를 고용해 성분을 해부했다. 그렇게 완성한 껌이 과자점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였고, 1948년 6월 자본금 100만 엔·직원 10명의 법인 '롯데'가 탄생하였다. 83원을 손에 쥐고 현해탄을 건넌 지 불과 7년 만이었다.
신격호의 첫 번째 한국 사업 구상이 백화점이 아니었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1965년 한·일 수교 이후 고국 투자를 결심한 그가 처음 그린 청사진은 제철소였다. 일본 가와사키 제철의 협력으로 사업계획서까지 완성되었으나 박정희 정부가 이미 국영 제철소를 추진 중이었고 계획은 무산되었다. 그 국영 제철소가 훗날의 포스코다. 롯데가 제철 사업에 먼저 진입했다면 한국 산업사의 지형이 상당히 다른 형태가 되었을 것이다.
성장과 위기
1967년 롯데제과를 시작으로 호텔롯데·롯데쇼핑이 연달아 설립되었다. 1979년 소공동에 들어선 롯데쇼핑센터는 기존 백화점의 두세 배 규모로, 지하 1층·지상 7층·영업면적 약 2만㎡의 규모였다. 단순히 점포 하나가 추가된 사건이 아니었다. 현대백화점·갤러리아가 뒤이어 대형 점포 전략을 채택한 것은 롯데 이후의 일이다. 한국 유통의 패러다임이 이 건물에서 전환되었다.
1980년대 일본 거품 경제 시절 신격호는 포브스 선정 세계 3~4위 부호 반열에 올랐다. 한국인 사상 최고 부호 기록이었다. 1997년 기준 계열사 29개·직원 3만 5,000명·매출 9조 원의 구조였으며, 매출의 60% 이상이 서비스·유통에서 나왔다. 제품을 제조해서 번 것이 아니라 공간을 설계하고 운영하여 번 기업이었다.
2015년, 장남 신동주와 차남 신동빈 사이의 경영권 분쟁이 외부에 공개되었다. 창업주 신격호는 장남 편에 섰으나 결국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고 신동빈이 회장 자리를 굳혔다. 2020년 1월, 신격호 명예회장이 별세하였다. 83원을 들고 현해탄을 건넌 청년은 115조 원 규모의 제국을 남기고 갔다.
지금 뭐 하는 회사
롯데쇼핑은 현재 백화점 29개점·마트 112개점·전자제품 전문점 305개·슈퍼 340개·영화관 179개를 운영하는 종합 유통기업이다. 시가총액은 약 5조 3,000억 원 수준으로 코스피 110위권이다. 2025년 1분기 매출은 약 3조 4,500억 원으로 소폭 감소하였으나 영업이익은 1,482억 원으로 전년 대비 29% 증가하였다. 백화점 본점과 잠실점은 연매출 2~3조 원대의 초우량 거점이지만 전체 실적은 2022년 이후 하락 추세다.
가장 뼈아픈 지점은 이커머스 플랫폼 롯데온이다. 2020년 출범 이후 2024년까지 누적 적자가 약 5,900억 원에 달하며, 쿠팡과 네이버 사이에서 뚜렷한 차별점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평가다. 신동빈 회장이 12년 만에 롯데쇼핑 대표이사로 직접 복귀하였고, 외부 인사로 채워졌던 계열사 수장 자리들을 롯데 내부 인사로 교체하는 방향 전환을 단행하였다.
투자 관점에서 보는 포인트
롯데쇼핑을 평가하는 핵심 축은 두 가지다. 첫째, 잠실·본점·부산본점 등 대형 거점 백화점이 구조적 소비 위축 환경 속에서 수익을 얼마나 유지하느냐다. 이익 개선 흐름은 최근 수치에서 확인되고 있으나 전체 매출이 3년째 줄어드는 구조는 부담 요인으로 남는다. 둘째, 5,900억 원의 적자를 안고 있는 롯데온이 손익분기점을 넘어서거나 구조적 재편 결정이 내려지는 시점이다. 신동빈 회장의 직접 복귀가 상징적 제스처에 그치는지, 실질적인 체질 변화로 이어지는지가 이 회사의 방향성을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긍정 요인으로는 거점 백화점의 안정적 수익성과 영업이익 개선세가 있으며, 리스크 변수로는 이커머스 적자 지속·전체 매출 하락 추세·이커머스 구조 개편 시점의 불확실성이 병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