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근하고 차 안에 앉아서 핸드폰을 켰더니 알림이 쏟아졌다.
SK하이닉스 어닝 서프라이즈. 선익시스템 +68%. 쏠리드 예상치의 2배.
눈을 한 번 비볐다. 화면이 맞나 싶어서.
사실 작년 내내 반도체 업황 이야기가 지겹게 나왔잖아요. '언제 터지냐', '이번 분기가 바닥이냐', 그 얘기를. 근데 막상 뚜껑 열어보니까 — 진짜 터졌습니다. 조용히 터진 게 아니라, 폭죽처럼.
오늘은 2025년 4분기 실적 시즌을 직접 정리했습니다. 분류 기준은 세 가지였어요. 예상치를 압도한 어닝 서프라이즈, 5개 분기 최대 실적,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얘기될 반도체·우주·전력 분야. 이 기준으로 추린 Top 20, 지금 시작합니다.
1. 반도체 & 장비 — HBM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
요즘 AI 서버 냄새가 어디서 나냐면, 딱 HBM에서 납니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전 세계 AI 데이터센터 안에서 SK하이닉스 메모리가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어요.
SK하이닉스는 이번 분기 매출 32.8조, 영업이익 19.1조를 기록했습니다. 예상치보다 17% 높게 나왔고, 시총 700조 시대가 현실이 됐어요. HBM 수요가 이 정도일 줄은 솔직히 저도 예측 못 했습니다.
삼성전자도 영업이익 20조로 예상치를 12% 상회했어요. '삼성은 HBM에서 밀렸다'는 말이 많았는데, 숫자는 반도체 부문의 완연한 회복을 보여줬습니다.
그 뒤를 이은 장비·부품주들이 더 재미있었어요.
두산테스나는 발표 다음 날 주가가 65.7% 올랐습니다. 화면 보면서 "이거 오탈자 아니야?" 싶었을 것 같아요. 디아이는 HBM 검사장비 공급을 시작하면서 흑자 구조를 굳혔고, 하나머티리얼즈는 최근 5개 분기 중 최대 영업이익을 찍었어요. 부품주 중에서 가장 탄탄한 회복세였습니다.
2. 전력 인프라 & 조선 — 북미 수요가 폭발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섹터가 이번 시즌의 진짜 주인공이었습니다.
북미 전력망 교체 수요라는 말이 뉴스에 자주 나왔는데, 그게 드디어 실적으로 찍혔어요. 엘에스일렉트릭은 주가 상승률 73%로 이번 시즌 가장 강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전선 냄새, 철재 냄새가 나는 무거운 산업 기업이 이런 숫자를 내다니 — 미국 전력망이 얼마나 오래 방치됐었는지 실감이 납니다.
HD현대일렉트릭은 영업이익 3,209억으로 예상치를 넘었고, 산일전기는 변압기 수요 호조 속에서 이익률을 높게 유지했어요. 두 회사 모두 선별 수주 전략으로 수익성을 극대화한 게 눈에 띄었습니다.
비에이치아이는 발표 후 주가가 52.9% 올랐고, 대한조선은 고선가 선박 매출 비중을 높이면서 영업이익 954억, 주가 30% 이상 급등을 기록했습니다. 조선업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신호였어요.
3. 우주 & 미래 기술 — 이제 실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우주 관련 종목들은 그동안 "언제 실적 나오냐"는 말을 들어왔잖아요. 이번 분기에 그 답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루미르는 국가위성사업 기대감에 순이익 흑자전환에 성공했어요. 인텔리안테크는 저궤도 위성 안테나 매출이 급성장하면서 영업이익 흑자로 돌아섰습니다. 막연한 기대주가 아니라, 진짜 실적주로 등극한 거예요.
에이치브이엠은 우주향 매출이 급성장하면서 영업이익이 예상치를 80% 가까이 상회했습니다. 숫자를 보면서 '아, 우주도 이제 먹히는 시대가 됐구나' 하는 느낌이 확 왔어요.
4. 어닝 서프라이즈 & 턴어라운드 — 예상을 뒤엎은 종목들
이 파트가 개인적으로 제일 흥미로웠습니다.
쏠리드는 영업이익 261억으로, 시장 예상치(122억)를 무려 113.8% 초과했습니다. 두 배 넘게 번 거예요. 어닝 서프라이즈 중의 어닝 서프라이즈였어요.
선익시스템은 OLED 투자 확대 수혜를 받아 예상치를 58% 상회, 주가가 68.1% 폭등했어요. 에이피알은 뷰티 디바이스 하나로 글로벌 시장을 흔들면서 영업이익 1,301억에 주가 30% 상승, K-뷰티의 존재감을 제대로 보여줬습니다.
더존비즈온은 클라우드 전환 가속화로 순이익이 예상치를 75% 상회했어요. ERP 회사가 조용히 클라우드 강자로 변신하고 있다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5. 금융 & 기타 — 증시 호황의 수혜
KB금융은 영업이익 1.77조로 예상치를 66% 상회하는 압도적인 수익력을 과시했어요. 미래에셋증권은 증시 호황 덕분에 운용 수익이 급증하면서 영업이익 8,456억, 예상치의 2배 가까운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아이티센글로벌 — 깜짝 등장
조금 생소할 수도 있는 이름인데, 아이티센글로벌이 웹3.0 금거래 플랫폼 등 신사업 성장으로 매출 4.2조라는 놀라운 수치를 냈어요. 새로운 먹거리가 숫자로 증명된 케이스입니다.
마무리하며
이번 4분기 실적 시즌을 정리하면서 느낀 건 딱 하나예요.
"시장은 기다리는 사람의 손을 들어준다."
HBM은 갑자기 나온 게 아니에요. 수년간 쌓아온 기술 투자가 이번에 폭발한 거고, 북미 전력망도 수십 년 묵은 인프라가 드디어 교체되는 시점에 우리 기업들이 자리를 잡고 있던 거예요. 준비된 기업, 그리고 그 기업에 미리 들어간 투자자에게 이번 시즌의 숫자들이 보상처럼 쏟아졌습니다.
아이 재우고 나서 혼자 이 숫자들 보면서 한참 화면을 들여다봤어요. 그 조용한 밤의 공기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주식 시장은 인내심 없는 사람에게서 인내심 있는 사람에게로 돈을 이동시키는 장치다." — 워런 버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