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S일렉트릭,초고압변압기,전력기기주,AI데이터센터수혜주,K전력기기,북미수주,국내주식분석,전력슈퍼사이클,직장인투자,우노디야투자일기

퀴즈 하나. 1974년 경남 울주군에서 면 메리야스를 만들던 공장이 있었다. 그 공장의 후신이 지금 북미 AI 데이터센터에 초고압 변압기를 납품하는 글로벌 전력 기업이라면 믿겠는가. 사실이다. 그리고 그 사이엔 엘리베이터도 있었고, 자판기도 있었고, 주유기도 있었고, 방탄복도 있었다.
LS일렉트릭. 요즘 투자자들 사이에서 꽤 뜨거운 이름이다. 그런데 이 회사가 얼마나 이상한 경로를 거쳐 여기까지 왔는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두 줄기가 합쳐진 회사
LS일렉트릭의 뿌리는 하나가 아니다. 두 줄기가 합쳐진 것이다.
첫 번째 줄기. 1958년 구인회 회장이 세운 금성사, 지금의 LG전자다. 국내 최초 라디오를 만들던 이 회사가 산업용 전기 사업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고, 1974년 중전기 전문 법인 금성계전을 세웠다. 기술이 없었으니 일본 후지전기와 손잡았다.
두 번째 줄기가 더 흥미롭다. 출발이 1955년 형광램프를 만들던 신광기업이다. 이 회사는 이후 부도가 나고 인수되고 합쳐지고 승강기 회사까지 붙으면서 결국 금성사 품에 안겼다. 1987년 이름이 금성기전이 됐다. 형광램프에서 시작해 엘리베이터를 거쳐 전기회사가 된 셈이다.
1988년 전후 LG그룹이 'F88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사업 구조 개편을 단행했다. 흩어진 전기 계열사들이 묶이기 시작했고, 금성계전과 금성기전이 합쳐져 금성산전이 됐고, 이후 LG산전으로 이름을 달았다. 청주·천안·오산·창원·주안 5개 공장에 해외 법인 12곳. 국내 최대 산업용 전기·자동화 기업의 탄생이었다.
이름만 일곱 번 바뀐 회사의 계보를 정리하면 이렇다. 형광램프 → 부도 → 인수합병 → 금성기전 + 금성계전 → 금성산전 → LG산전 → LS산전 → LS일렉트릭.
위기가 본질을 만들었다
LG산전이 출범하자마자 1997년 외환위기가 터졌다. 전체 인원의 20%를 줄이고, 엘리베이터는 미국 오티스에, 자판기·쇼케이스는 미국 캐리어에 넘겼다. 한때 LG산전의 중요한 축이었던 것들이 이 시기에 다 떨어져 나갔다. 역설적으로 이 위기가 지금의 LS일렉트릭을 만들었다. 군더더기가 다 빠지고 전력과 자동화 두 축만 남았다. 본질만 남긴 셈이다.
그런데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매던 1999년, 이 회사는 청주에 전력시험기술센터를 세운다. 국내 최초의 민간 전력 시험소다. 위기 한복판에 투자를 한 것이다. 이 선택이 나중에 해외 수주 경쟁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2003년, 구인회 창업주의 동생들인 구태회·구평회·구두회가 LG전선·LG산전 등 5개사를 끌고 분가했다. LS그룹이 탄생한 순간이다. LS는 Leading Solution의 줄임말이기도 하고, LG와 GS를 합친 이름이기도 하다. 두 집안이 나뉘면서 남긴 흔적이 이름에 그대로 박혀 있다.
그리고 황당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회사 영문명이 LSIS, 즉 LS Industrial Systems였다. 이름 지을 때는 아무 문제없었는데, 중동에서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조직 ISIS가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으면서 문제가 생겼다. LSIS와 ISIS, 발음이 너무 닮았다. 결국 2020년 이름을 LS일렉트릭으로 바꿨다. 테러 조직 덕분에 리브랜딩을 한 셈이다.
해외 개척 과정의 압권은 이라크 수주전이다. CEO가 직접 방탄복을 입고 협상 테이블에 앉았고, 비유럽 기업 최초로 8,400만 달러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를 따냈다. 당시 '람보팀'이라 불린 소수 정예 영업팀이 제3세계 험지를 누비며 수주를 뚫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리고 2007년부터 초고압 가스절연개폐장치 독자 개발, 2009년부터 초고압 직류송전 HVDC 투자를 시작했다. AI 붐이 오기 15년 전에 이미 씨를 뿌린 것이다.
지금의 LS일렉트릭 — 전력 슈퍼사이클의 한복판에서
LS일렉트릭은 크게 전력 시스템과 산업 자동화 두 축으로 돌아간다. 전력 사업 부문에는 배전반·차단기·변압기·초고압 변압기가, 자동화 부문에는 인버터·PLC·서보·HMI 등 산업 제어 기기가 포함된다.
2025년 연결 기준 매출 4조 9,622억 원(전년 대비 9%), 영업이익 4,269억 원(9.6%) — 매출·영업이익 모두 사상 최대를 경신했다. 연간 신규 수주도 약 3조 7,000억 원으로 창사 이래 최대였다. 연말 수주잔고는 약 5조 원으로, 이 중 초고압 변압기 수주잔고만 약 2조 7,000억 원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북미 매출은 처음으로 1조 원을 돌파했다. 전체 매출의 약 20%다.
수주 배경이 구체적이다. 북미 빅테크 데이터센터에 배전반·초고압 변압기를 납품하는 구조다. 2026년 들어서는 빅테크와 약 1,703억 원 규모의 데이터센터 전력설비 공급 계약을 체결하고, 4월에는 345kV 초고압 변압기 약 1,066억 원 수주를 추가했다. 2026년 북미 데이터센터 관련 수주만 약 5,000억 원에 달한다는 설명이다.
생산능력도 이에 맞춰 확대했다. 부산 공장 증설과 LS파워솔루션 인수를 통해 초고압 변압기 생산능력을 기존 연간 2,000억 원에서 8,000억 원으로 4배 확대했다. HD현대일렉트릭·효성중공업과 함께 북미 초고압 변압기 시장에서 'K-전력기기 빅3'로 불리는 입지다.
증권가 컨센서스는 2026년 매출 6조~6조 5,000억 원대, 영업이익 6,500억~7,000억 원 수준을 전망하고 있다. 2024년 12월 단행한 5대 1 액면분할로 주식 유동성도 높아졌다.
다만 점검할 리스크도 있다. 국내에서 생산해 수출하는 초고압 변압기는 미국 관세 부담에 노출돼 있으며, 2027년 말까지 약 15% 수준의 관세가 적용된다. 영업이익률 8.6%는 HD현대일렉트릭(24.4%), 효성중공업(12.5%)에 비해 낮은 수준으로, 고마진 초고압 변압기 비중 확대에 따른 이익률 개선 여부가 중기 관전 포인트다. AI 데이터센터 수주가 반복 매출로 이어지는지, 미국 현지 생산 거점 확장이 관세 리스크를 얼마나 상쇄하는지가 2026~2027년의 핵심 변수다.
씨를 뿌리는 데 10년, 열매를 거두는 데 10년. 지금 보이는 것이 그 수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