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롯데. 한국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이름이다. 그런데 이 이름이 어디서 왔는지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드물다.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그 소설 속 여주인공 이름이 샤를로테(Charlotte)인데, 그 애칭이 바로 '롯데(Lotte)'다. 껌과 호텔과 면세점의 이름이 독일 문학 여주인공에서 왔다는 것. 신격호 창업주가 얼마나 감성적인 청년이었는지를 단 하나의 이름이 증명한다.
그리고 또 하나. 롯데의 첫 번째 사업은 껌이 아니었다. 폭격으로 공장이 두 번 날아간 청년이 허물어진 군수공장 잔해에서 끓인 것은 비누였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훨씬 더 드물다.
[창업 스토리 — 83원과 폐허, 그리고 껌]
1921년 경남 울산. 5남 5녀 맏이로 태어난 신격호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생활을 이어갔다. 1941년, 집안의 기둥 같던 큰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흉년까지 겹쳤다. 나무껍질과 풀뿌리로 연명하던 청년은 결국 결심한다. 뱃삯을 내고 남은 돈 83원을 쥔 채 일본행 배에 올랐다.
일본에 도착한 신격호는 친구 자취방에 얹혀살며 우유배달을 시작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정확한 시간에 배달하는 청년의 소문이 퍼지자 고객이 늘었다. 배달 건수가 많아지자 다른 고학생들을 직접 고용해 관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르바이트생이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는 상황. 이미 이 시점에서 뭔가 달랐다.
1944년, 신격호를 눈여겨보던 하나미쓰라는 전당포 주인이 찾아온다. "6만 엔을 댈 테니 군수용 커팅오일 공장을 차려보라." 당시 회사원 월급이 80~100엔 수준이었으니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그런데 공장이 본격 가동되기도 전에 미군 폭격으로 전소. 남은 돈으로 다시 공장을 차렸더니 또 폭격으로 전소. 두 번 연속 공장이 날아갔다.
보통 사람이라면 여기서 포기한다. 신격호는 오히려 생각했다. '전쟁이 끝나면 사람들은 다시 아름다워지고 싶어 할 것이다.' 그 판단 하나로 비누와 포마드 크림을 만들기 시작했고,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생산하는 족족 팔려나갔다. 1년 반 만에 빌린 돈을 전부 갚고 집 한 채를 더 선물하고 나서야 다음 단계를 생각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군이 들여온 껌이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신격호는 시중의 껌을 죄다 사다가 씹으면서 연구했다. 약제사까지 고용해 배합을 연구했고, 그렇게 만든 껌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1948년 6월, 자본금 100만 엔, 직원 10명의 회사 '롯데'가 공식 탄생했다. 괴테의 여주인공 이름을 달고.
[성장과 위기 — 껌에서 재계 그룹까지]
껌에서 초콜릿으로의 확장도 신격호다운 방식이었다. 1961년, 일본 가정에서 손님 접대용 센베이 과자가 초콜릿으로 대체되는 흐름을 포착했다. 초콜릿 제조는 과자 업계의 중공업이라 불릴 만큼 까다로운 공정이 필요했지만, 뛰어들었고 성공했다. 당시 구사한 마케팅도 신격호답다. 껌 포장 안에 추첨권을 넣고, 당첨자에게 1천만 엔을 주겠다고 광고를 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상점 앞에 줄이 늘어섰다.
1965년 한일수교로 한국 투자의 길이 열리자, 신격호는 고국으로 넘어왔다. 1967년 롯데제과를 시작으로 호텔롯데, 롯데쇼핑, 롯데케미칼의 전신까지 잇달아 세우거나 인수하면서 롯데는 한때 재계 5위 그룹으로 성장했다. 1980~90년대 일본 거품 경제 시절에는 포브스 선정 세계 3~4위 부호에 오르기도 했다. 한국인 역사상 최고 부호 기록이었다.
그리고 2015년. 모든 게 터졌다.
[왕자의 난 — 아들이 아버지를 이사회에서 해임한 날]
신동빈 회장의 친형 신동주 전 부회장이 부친 신격호를 데리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 6명을 해임하려 했다. 그러자 신동빈은 즉각 긴급 이사회를 소집해 아버지를 역으로 해임시켰다. 아들이 아버지를 이사회에서 쫓아낸 초유의 사태. 일본 닛케이 신문은 이를 "시게미쓰 일족의 난"이라는 헤드라인으로 보도했고, 롯데가 그동안 쌓아온 416개짜리 순환출자 고리와 불투명한 지배구조가 한꺼번에 세상에 드러났다.
아이러니한 건, 이 싸움이 역설적으로 롯데를 더 투명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형제의 난 직후 2개월 만에 순환출자 고리 276개가 67개로 줄었다. 2017년 10월 롯데지주가 공식 출범했고, 2018년에는 순환출자 고리가 완전히 사라졌다. 왕자의 난이 없었다면 이 구조 개선이 이렇게 빨리 이루어졌을지 의문이다.
한 가지 더. 신격호는 이미 2000년에 유언장을 써두었다. 경영권 분쟁이 터지기 무려 15년 전이다. 내용은 한국어·일본어·영어 세 개 언어로 작성됐다. "롯데그룹 후계자는 신동빈으로 한다. 신동주와 가족들은 경영에 참여하지 말고 그룹 발전을 위해 협력해 달라." 유언장은 봉인된 채 금고에 있었다. 창업주는 이미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뭐 하는 회사 — 위기 이후의 롯데]
2026년 공정거래위원회 발표 기준, 롯데그룹은 공정자산총액 약 142조 4,000억 원으로 재계 6위에 위치한다. (2025년 자산 재평가 효과로 5위를 탈환했으나, 1년 만에 한화에 밀리며 다시 6위로 하락. 10대 그룹 중 자산총액이 감소한 유일한 그룹이다.) [수정 사유: 원고 '재계 5위' → 2026년 공정위 최신 발표 기준 6위로 수정]
그럼에도 2026년 1분기 실적은 뚜렷한 반등을 보였다. 연결 기준 매출 18조 6,000억 원, 영업이익 7,876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영업이익이 181% 증가했다. 수년간 추진한 고강도 구조조정과 저효율 자산 매각의 효과가 숫자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여전히 무거운 짐도 있다. 롯데케미칼은 4년 연속 적자의 늪에서 2026년 반등을 시도 중이며, 그룹 비금융 계열사의 합산 순차입금은 40조 원을 상회한다. 롯데쇼핑은 쿠팡·이커머스 공세 속에서 온라인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구조조정이 완성됐는지, 아니면 아직 진행 중인지를 확인하는 것이 지금 롯데를 보는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