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키움증권을 그냥 '수수료 싼 증권사'로만 알고 있다면, 진짜 재미있는 부분을 놓친 것이다.
이 회사의 뿌리는 금융이 아니다. 1986년 김익래 창업주가 세운 소프트웨어 회사 '다우기술'이 출발점이다. 다우기술은 증권사 전산 시스템을 만들어주는 회사였다. 대형 증권사들의 IT 인프라를 구축해주면서 내부에서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이 시스템, 우리가 직접 운영하면 안 되나?' 그렇게 2000년에 키움닷컴증권이 탄생했다.
그리고 지금, 키움증권은 다우키움그룹 전체 매출의 98%를 혼자 벌어다 준다. IT 회사가 금융 자회사를 만들었더니, 그 자회사가 그룹 전체를 먹여살리는 구조가 됐다. 지배구조상으로는 '증손자 회사'인데 실질적으로는 그룹의 심장. 이게 키움증권의 진짜 정체다.
[창업 스토리]
2000년 1월, 닷컴 버블의 절정기였다. '인터넷'이라는 단어만 붙으면 주가가 뛰던 시절, 키움닷컴증권은 태어났다. 다우기술이 주축이 되고 삼성물산 등이 출자해 세운 회사였다. 참고로 삼성물산은 2005년에 조용히 지분을 팔고 나갔다. 그 뒤로 키움증권이 어떻게 됐는지 지금 알고 있으면 뭔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창업 직후 키움이 꺼낸 카드는 하나였다. 수수료를 업계 기준의 4분의 1로 낮춘 것이다. 당시 대형 증권사들 입장에서는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영업점도 없고, 객장도 없고, PB도 없는 회사가 뭘 하겠어.' 증권업계 내부에서 회의론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없음'이 강점이 됐다. 점포가 없으니 임대료가 없다. 직원이 적으니 인건비가 없다. 그 여유분을 수수료 인하로 고객에게 돌렸다. 구조적으로 싸게 팔 수 있는 회사였다.
키움이 만든 HTS 이름은 '영웅문'. 처음 나왔을 때 무협 게임으로 착각한 사람들이 꽤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영웅문이 나중에 야구단 이름과 절묘하게 연결된다. 2019년부터 네이밍 스폰서를 맡은 야구단 이름이 '키움 히어로즈', 즉 영웅들이다. 영웅문 HTS와 히어로즈 구단. 이름도 닮은꼴로 흘러갔다.
[성장과 위기]
설립 4년 만에 시장 점유율 1위. 이 숫자 하나가 당시 회의론자들의 입을 닫게 했다. 2005년부터는 국내 주식 위탁매매 시장점유율 1위 자리를 놓지 않고 있다. 20년 가까이.
코로나19가 터졌다. 동학개미운동이 폭발하면서 키움은 대박을 맞았다. 2019년 상반기 신규 계좌 개설이 약 25만 건이었는데, 2020년 상반기에는 143만 건을 넘었다. 456% 폭증. 그런데 계좌는 넘쳐나는데 서버가 버티질 못했다. '수수료 아끼려고 키움 들어왔다가 서버 터져서 매도 못 했다'는 원성이 커뮤니티를 가득 채웠다.
더 큰 위기는 2023년에 왔다. SG증권발 주가 폭락 사태에 이어, 영풍제지 주가 급락으로 미수금 4,943억 원이 한꺼번에 발생했다. 그해 상반기 순이익 4,258억 원을 넘는 금액이 단 한 건의 사태로 날아간 것이다. 내부통제 문제가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런데 반전이 있다. 이 두 번의 대형 사고를 연달아 맞고도 키움증권은 무너지지 않았다. 2024년에는 영업이익 1조 원 클럽에 복귀했고, 2025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순이익 1조 원을 달성했다.
[지금 뭐 하는 회사]
2025년 연결 기준 영업이익 1조 4,882억 원(전년 대비 +35.5%), 매출 17조 1,217억 원(+51.8%), 당기순이익 1조 1,150억 원(+33.5%). 창립 25년 만에 처음으로 순이익 1조 원을 넘겼다. 국내·미국 증시 활성화로 위탁매매 수수료가 늘었고, PF와 M&A 인수금융 딜을 다수 따내면서 IB 부문도 성장했다.
2026년 1분기에는 분기 기준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주식 수수료 수익이 전년 동기 대비 120.8% 급증하며 국내 증시 환경 개선의 수혜를 그대로 흡수했다.
시장 점유율은 2025년 기준 국내주식 거래대금의 약 18%, 개인 투자자 기준으로는 28% 수준이다. 여전히 업계 1위지만 점유율은 조금씩 내려오고 있다. 토스증권이 간편한 UI로 2030세대를 빠르게 흡수하면서 시장이 세대별로 나뉘는 분위기다. MZ는 토스, 기성 개미는 키움. 이 구도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가 업계의 관심사다.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지정을 받고 발행어음 사업 인가도 취득하면서 브로커리지 의존도를 줄이고 IB 중심의 구조로 체질을 바꾸는 중이다.
[투자 관점에서 보는 포인트]
키움증권을 볼 때 핵심은 브로커리지 의존도다. 수수료 수익이 증시 거래대금에 크게 연동되는 구조라, 시장이 달아오를 때 실적이 폭발하고 시장이 식으면 실적도 같이 식는다. 2025년 순이익 1조 원도 결국 국내외 증시 활성화 덕이 컸다. 이 변동성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이 회사에 대한 시각이 달라진다.
#긍정요인: 국내 주식 위탁매매 시장점유율 1위(20년 유지), 2025년 사상 첫 순이익 1조 원 달성, 발행어음 인가 취득으로 IB 확장, 영웅문 플랫폼 기반 높은 고객 충성도, 2026년 1분기 분기 최대 실적 경신
#변수: 브로커리지 수익의 증시 사이클 연동 구조(변동성 큼), 토스증권의 MZ 세대 점유율 잠식, 2023년 내부통제 취약성 드러남(영풍제지·SG사태), IB 사업 확장 성과 불확실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