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B손해보험 하면 뭐가 떠오르나. 자동차보험? 광고? 아니면 그냥 '동부화재 이름 바뀐 곳'? 이 회사의 뿌리를 파고들면 꽤 놀라운 이야기가 나온다. 이 회사, 원래 재벌이 창업한 게 아니다. 국가가 만든 자동차보험 독점기구에서 시작했다.
1962년 국내 손해보험사들이 공동으로 출자해 세운 '한국자동차보험공영사'가 그 출발이다. 말 그대로 공영(公營). 특정 오너가 없는, 정책적으로 설계된 회사였다. 이 회사가 대한민국 자동차보험 시장을 오랫동안 독점했다. 지금의 DB손해보험이 자동차보험 쪽에서 유독 역사가 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1997년엔 자동차종합보험 최초 판매 기록이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더 놀라운 건 그다음이다. 계열사가 50개 넘던 동부그룹이 구조조정으로 절반 넘게 팔려나가는 폭풍 속에서도, 이 보험사만큼은 끝내 팔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룹 전체를 먹여 살리는 버팀목이 됐다.
[창업 스토리]
DB그룹의 창업주는 김준기 회장이다. 고려대 경제학과를 다니던 1969년, 자본금 2,400만 원에 직원 두 명을 데리고 미륭건설(지금의 동부건설)을 차렸다. 24살짜리 청년이 직원 둘이랑 시작한 건설회사. 아무리 봐도 보험업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이 작은 건설회사가 폭발적으로 성장한 건 1970년대 중동 건설 붐 덕분이었다. 1973년부터 1980년까지 사우디아라비아에서만 20억 달러어치 공사를 수주했다. 창업 10년 만에 재계 30대 그룹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그 돈으로 무얼 샀냐. 1983년, 당시 부실기업 취급을 받던 한국자동차보험을 인수했다. 중동 건설 자금이 자동차보험 공기업을 사들인 것이다. 민영화의 주체가 건설업으로 달러를 번 재벌이라는 게 흥미롭다. 인수 직후인 1984년엔 자동차보험 전업사에서 종합 손해보험사로 전환하며 사업 영역을 단번에 넓혔다. 같은 해 괌에 해외지점을 열었다. 인수한 지 1년 만에 해외 영업까지 시작한 셈이다.
[성장과 위기]
동부그룹은 2010년대 초반까지 승승장구했다. 철강·화학·전자·반도체·금융까지 손을 뻗으며 재계 10위권 언저리를 오갔다. 그런데 2013년 무렵부터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가장 큰 원인은 제철 사업이었다. 2009년 충남 당진에 전기로 제철 공장을 세웠는데, 타이밍이 최악이었다. 전 세계 경기 불황에 철강 가격은 폭락하고, 전기로 제철의 핵심 원료인 고철 가격은 반대로 높아지는 상황이 벌어졌다. 2013년 동양그룹 사태 여파로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그룹 전체가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결국 동부건설·동부제철을 비롯한 핵심 계열사들이 팔려나갔고, 계열사 수는 53개에서 24개로 반 토막 났다. 재계 순위도 35위까지 밀렸다.
그런데 이 와중에 동부화재(현 DB손해보험)는 매각 리스트에 없었다. 20년 넘게 흑자 경영을 이어온 이 보험사가 그룹의 실질적인 생명줄이었기 때문이다. 이익 중심 경영, 철저한 손해율 관리, 업계 최상위권의 ROE와 ROA. 계열사들이 흔들릴 때 이 보험사만은 꿋꿋하게 돈을 벌고 있었다.
구조조정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2017년, 그룹은 이름을 '동부'에서 'DB'로 바꿨다. 단순한 리브랜딩이 아니라 금융 중심 그룹으로 다시 태어겠다는 선언이었다. 같은 해 동부화재해상보험도 DB손해보험으로 사명을 바꿨다. 2020년 창업주의 장남 김남호 회장이 취임하며 2세 경영 시대가 열렸다. 아버지 세대가 건설과 철강으로 키운 그룹을, 아들 세대는 보험으로 이어가는 구조가 완성됐다.
[지금 뭐 하는 회사]
현재 DB손해보험은 자동차보험 시장에서 삼성화재(점유율 약 28%)에 이은 업계 2위(약 22%)다. 현대해상·KB손해보험과 함께 '빅4' 체제를 형성하고 있다. DB생명보험·DB캐피탈 등을 자회사로 거느린 금융 중심 그룹의 핵심 계열사다.
2025년 실적을 보면 영업이익 2조 1,137억 원이다. 이 중 보험으로 번 돈이 1조 359억 원, 투자로 번 돈이 1조 778억 원. 보험료 수입과 투자 수익이 거의 반반이라는 게 포인트다. 54조 원 규모의 운용자산에서 나오는 투자 수익이 실적을 강하게 받쳐주고 있다. 당기순이익은 1조 5,349억 원으로 전년 대비 소폭 줄었지만, ROA 기준 3.2%로 업계 평균(2.3%)을 웃돈다.
2026년 가장 큰 뉴스는 미국 보험사 포테그라 인수 완료다. 2025년 9월 26일 계약을 체결하고, 2026년 5월 30일 최종 종결했다. 인수 금액은 16억 5,000만 달러(약 2조 3,000억 원)로 국내 보험사가 미국 보험사를 인수한 첫 사례이자 보험업계 최대 해외 M&A 사례다. [수정 사유: 원고 '2025~2026년 뉴스' → 2026년 5월 30일 최종 완료 사실로 업데이트]
포테그라는 1978년 설립된 글로벌 보험그룹으로 미국 플로리다주 잭슨빌에 본사를 두고 있다. 특화보험·신용·보증보험 사업을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축해왔으며, 미국 전역과 유럽 12개국에서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2025년 기준 연간 보험료 규모는 33억 5,000만 달러(약 4조 8,000억 원)다. DB손해보험이 내건 목표는 "미국에 제2의 DB손해보험을 만든다"는 것이다.
[투자 관점에서 보는 포인트]
DB손해보험을 보험사로만 보면 절반만 보는 것이다. 이 회사는 54조 원 규모의 자산을 굴리는 거대한 투자 기관이기도 하다. 보험료로 모은 돈을 어디에 어떻게 운용하느냐가 실적의 절반을 결정한다. 실제로 2025년 영업이익의 절반 이상이 투자 수익에서 나왔다. 보험 손해율이 조금 나빠져도 투자 수익이 받쳐주는 구조다.
#긍정요인: 자동차보험 업계 2위의 안정적 시장 지위, 보험료·투자 수익 반반의 이중 수익 구조, 포테그라 인수로 미국·유럽 글로벌 플랫폼 확보, ROA 3.2%로 업계 평균 상회
#변수: 포테그라 인수에 따른 단기 자본비율 하락 부담, 국내 저출산·고령화로 보험 시장 성장 둔화, 금리 변동에 따른 투자 수익 민감도, 포테그라 해외 사업 통합 리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