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 번 무너지고 세 번 일어선 바이오벤처, 제넥신의 27년
국내 바이오 기업 가운데 '세 번 망했다'고 스스로 말할 수 있는 회사는 많지 않다. 제넥신이 그 드문 사례다. 유전자 백신이라는 개념조차 낯설던 시절에 그 기술을 들고 나온 하버드 박사 한 명, 창업 6년 만의 폐업 직전, 코스닥 상장 3년 만의 관리종목 지정, 그리고 코로나 국면의 1조 원대 기술수출. 이 회사의 궤적은 그 자체로 하나의 드라마에 가깝다.
바이오 기업 기사는 대체로 두 극단으로 나뉜다. 임상 성공이거나 임상 실패다. 그러나 제넥신은 그 사이에서 몇 번이고 방향을 바꾸며 살아남았다. 이 회사를 들여다볼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창업 스토리
1999년 6월, 포항공과대(포스텍) 생명과학과 교수 성영철이 제자 세 명과 함께 회사를 설립했다. 이름은 제넥신(Genexine)이다. Gene(유전자)과 Exine(꽃가루의 외피)을 결합한 조어로, '생명의 유전정보를 담는 그릇'이라는 의미를 사명에 직접 담았다. 이름 하나에서 창업자가 유전자 기술에 얼마나 몰입했는지가 드러난다.
성영철 회장의 이력은 평범하지 않다. 연세대 생화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분자생물학 석사, 하버드대 병리학 박사를 취득한 뒤 하버드 연구원으로 근무하다 귀국했다. 1989년 포스텍 교수로 임용된 후 10년을 연구에 매진하다 1999년 창업을 선택했다. IT 붐과 함께 바이오에도 기대가 쏠리던 시기였고, 그는 10년간 파고든 유전자 기술이 신약이 될 수 있다는 확신 하나로 연구실을 나섰다.
초기 거점은 판교 테크노밸리의 코리아바이오파크였다. DNA 이중나선 형태를 본떠 지은 10층 건물이다. 당시 이곳에는 바이오 기업 30여 개가 입주했고 제넥신도 그중 하나였다. 구성원은 교수와 제자들뿐인 소규모 팀이었다.
성장과 위기
첫 번째 위기는 창업 직후부터 시작됐다. 내세운 기술이 유전자 백신이었는데, 2000년대 초에는 개념 자체가 지나치게 낯설었다. 투자 유치는 사실상 봉쇄됐다. 2005년에는 임상시험까지 실패하며 폐업 직전에 몰렸다. 직원을 모두 내보낸 1인 연구소 상태였고, '폐업 직전'은 수사가 아닌 실제 상황이었다.
성영철은 여기서 물러서지 않았다. 1년여를 칩거하며 실패 원인을 분석했고, 결론은 대학 연구실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기술에 집착했다는 것이었다. 시장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뼈아픈 깨달음이었다. 그래서 방향을 전면 수정했다.
새로 파고든 기술이 하이브리드Fc(hyFc)다. 약물이 체내에서 유지되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기술이다. 매일 맞아야 하는 주사를 2주 혹은 한 달에 한 번으로 줄일 수 있다면 환자 입장에서는 삶의 질 자체가 달라진다. 2006년 이 기술을 완성하자 녹십자, 일동제약 등 국내 제약사들이 손을 내밀었고, 소멸 직전이던 회사가 되살아났다.
2009년 기술특례로 코스닥에 상장하며 첫 번째 반전에 성공했다. 그러나 두 번째 위기가 곧바로 이어졌다. 상장 3년 만인 2012년, 코스닥 유지 조건인 연 매출 30억 원을 채우지 못해 관리종목으로 지정됐다. 증시에서 관리종목은 사실상 퇴출 예비군을 뜻한다. 주변에서는 다른 사업으로 매출을 올리라고 권했지만 성 회장은 R&D에 집중하는 길을 택했다. 그해 자궁경부전암 치료제가 임상 1상에 진입했고, 한독과 지속형 성장호르몬 기술이전 계약도 체결했다. 결국 매출 30억 원을 넘겨 이듬해 관리종목에서 벗어났으며, 한때 시가총액 1조 원을 돌파하는 국면까지 도달했다. 관리종목에서 시총 1조 클럽으로의 이동, 이것이 바이오 기업이 보여주는 진폭이다.
세 번째 도약은 기술수출이었다. 2017년 중국 아이맵(I-Mab)과 면역항암제 GX-I7 관련 계약을 맺었고, 2021년에는 인도네시아 KG바이오에 동일 파이프라인을 총 계약 규모 11억 달러(약 1조 2,000억 원)로 기술이전했다. 선급금만 약 299억 원 규모였다. 코로나19 국면에서는 국내 최초로 코로나 DNA 백신 임상을 개시하며 글로벌 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자궁경부암 치료제 임상에서는 MSD 키트루다와의 병용 임상에서 완전관해(CR) 사례가 확인됐다. 키트루다와 협력 임상을 진행한다는 사실 자체가 기술력을 글로벌에서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
지금 뭐 하는 회사
창업주 성영철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최대주주 한독을 중심으로 새로운 거버넌스가 구축됐다. 현재는 홍성준 대표가 사업개발과 경영관리를, 최재현 대표가 R&D와 임상개발을 맡는 각자대표 체제다. 최재현 대표는 프로탁 분야 글로벌 선도기업 아비나스(Arvinas) 출신으로, 이피디바이오 창업자에서 제넥신 R&D 총괄로 합류한 인물이다. 세대교체와 전문성 보강이 동시에 이뤄진 구조다.
주요 파이프라인은 면역항암제 GX-I7, 지속형 성장호르몬 GX-H9, 빈혈 치료제 GX-E4(에페사), HPV 관련 DNA 백신 GX-188E, 그리고 바이오프로탁 기반 GX-BP1이다.
시가총액은 2026년 기준 약 2,400억 원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다. 한때 1조를 넘겼던 시총이 이 수준이라는 점이 현재 위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실적도 냉혹하다. 연결 기준 매출은 2021년 368억 원에서 2022년 161억 원, 2023년 44억 원, 2024년 29억 원까지 축소됐다가 2025년 46억 원으로 소폭 회복했다. 다만 2026년 1분기 매출은 4억 원에 그쳤고, 영업손실은 매년 수백억 원대가 이어지고 있다. 현재 매출의 상당 부분은 최대주주로 있는 네오이뮨텍과 관계사 KG바이오 대상 프로젝트 개발용역에서 발생한다.
에페사 상업화 현황
기대를 모았던 빈혈 치료제 에페사는 인도네시아에서 2023년 10월 품목허가를 받고 2024년 4월 이미 출시됐다. 캄보디아에서도 2024년 12월 허가 후 2025년 1월 출시됐다. 다만 아시아 지역은 로열티 수취가 불가능한 계약 구조이므로 해당 지역 매출이 제넥신 손익에 직접 기여하지는 않는다. 로열티 수령권은 유럽과 MENA 지역에 한정되며, 실질적 수익은 국내 발매에서 먼저 발생할 구조다.
문제는 그 국내 허가다. 2026년 6월 식약처는 비투석 만성신장질환 환자 대상 에페사 품목허가 신청에 대해 반려를 통보했다. 회사 측은 안전성·유효성 문제가 아니라 제조 및 품질관리(CMC) 관련 보완 사항이라고 설명하며 신속한 보완 후 재신청을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재신청 시에는 반려 사유 중심으로 심사가 진행되므로 절차 단축 여지는 있으나, 상업화 일정이 다시 밀린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세 번째 플랫폼, 바이오프로탁
회사가 현재 가장 공격적으로 베팅하는 영역은 바이오프로탁(bioPROTAC)이다. 2024년 10월 표적단백질분해제(TPD) 전문기업 이피디바이오테라퓨틱스를 흡수합병하며 플랫폼 기술 'EPDeg'과 핵심 연구인력을 확보했다. 기존의 하이브리드Fc, DNA 백신에 더해 플랫폼 세 개를 보유한 회사가 됐다는 것이 현 경영진의 설명이다.
바이오프로탁은 기존 저분자 프로탁의 한계를 넘기 위한 접근법이다. 저분자 프로탁이 다룰 수 있는 표적 범위가 제한적이라면, 바이오프로탁은 단백질 분해 유도 물질 자체를 나노바디 기반 융합 단백질 또는 mRNA 형태로 전달해 기존 방식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암 유발 단백질까지 분해 대상으로 삼는다. 열쇠 구멍이 맞는 자물쇠만 열 수 있던 방식에서, 자물쇠 자체를 분해하는 방식으로 전환한 셈이다.
대표 후보물질 GX-BP1은 국내 최초로 SOX2 분해능을 입증했고, 미국 암학회(AACR)와 글로벌 TPD 서밋에서 연구 성과를 발표했다. 글로벌 제약사 다케다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아 공동 연구도 진행 중이다. 회사는 GLP 독성시험 결과를 확보한 뒤 글로벌 기업과의 기술이전 논의를 본격화한다는 계획이며, 2026년 내 의미 있는 기술이전 계약 1건 체결을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긍정 요인과 변수
긍정 요인은 명확하다. 플랫폼 세 개 체제로의 전환, 아비나스 출신 R&D 총괄 영입, 다케다와의 공동 연구, 에페사의 아시아 3개국 허가 실적, 그리고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에 따른 관리종목 지정 면제 요건 확보가 하방을 지지한다.
변수 역시 뚜렷하다. 에페사 국내 허가가 반려된 상황에서 재신청 후 승인 시점이 확정되지 않았고, GX-BP1은 여전히 초기 개발 단계다. 기술수출 목표 시점이 상반기에서 하반기로, 다시 연내로 반복 조정된 이력은 실행 리스크를 시사한다. 연 매출이 수십억 원 수준에 머무는 동안 수백억 원대 영업손실이 누적되는 구조에서 현금 소진 속도와 추가 자금 조달 방식은 지속적으로 점검할 항목이다. 바이오 기업의 밸류에이션은 실적이 아니라 기대와 데이터로 움직이며, 그 기대가 무너질 때의 낙폭 또한 크다는 점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제넥신의 27년은 결국 전환, 집요함, 플랫폼의 이야기다. 기술이 아니라 시장을 봐야 한다는 깨달음으로 방향을 틀었고, 관리종목 딱지 앞에서도 R&D를 놓지 않았으며, 이제 세 번째 플랫폼으로 네 번째 반전을 시도하고 있다. 살아남는 기업은 성공을 반복하는 기업이 아니라 실패를 해석하는 기업이라는 사실, 제넥신이라는 이름이 증명해온 명제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