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하철 충정로역 환승 통로가 S자로 꺾인 이유
충정로역을 이용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상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환승 통로가 왜 이렇게 S자로 구불구불하게 생겼지? 지하철 통로가 직선이 아닌 이유는 단 하나, 지상에 있는 한 회사의 사옥을 피해서 뚫었기 때문이다. 그 사옥의 주인이 종근당이다. 기업 하나가 서울 지하철 동선을 바꿔놓은 것이다.
이 회사의 출발점을 알면 더 놀랍다. 시작은 1941년, 서울 아현동 282-3번지의 딱 4평짜리 가게였다. 그리고 그 첫 이름이 '종근당'도 아니었다. 일제강점기였으니 일본식 이름을 달았다. '궁본약방(宮本藥房)'. 그게 종근당의 출발이다.
4평짜리 일본식 이름의 약방이 84년을 버텨 코스피 상장사가 되고, 노바티스와 1조 7천억 원 규모의 신약 계약을 맺기까지. 이게 그냥 열심히 살았다는 얘기가 아니다. 거의 사고의 연속이었다.
창업 스토리
창업자 이종근은 1919년 충청남도 당진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가족과 함께 1931년 서울로 올라와 생계를 위해 철공소 견습공, 정미소 쌀 배달원을 전전했다. 직업을 두 번 바꾸고 세 번째로 약품 외판원이 됐을 때 비로소 '이거다'는 감을 잡았다.
자전거를 타고 경성과 경기도는 물론 황해도, 전라도 약방을 돌며 영업하던 그는 1941년 5월 7일 아현동에 4평짜리 가게를 얻어 문을 열었다. 이름은 궁본약방. 일제강점기라 일본식 상호를 써야 했다. 그런데 열자마자 2년 만에 또 닫힌다. 1943년 조선총독부의 기업정비령으로 강제 폐업 당한 것이다. 보통 사람이면 여기서 접었겠지만, 이종근은 쉬는 날마다 몰래 약품 외판을 계속했다.
1946년 광복 이듬해에 '종근당약방'으로 재창업했다. 이번엔 자기 이름을 그대로 붙였다. 이종근의 '종근'. 그가 회고록에 남긴 말이 있다. "종근당약방이 흥하면 나 이종근이 흥하는 것이고, 망하면 나도 망하는 것이다." 단순한 자존심이 아니라 "내가 책임진다"는 선언에 가까웠다.
그리고 1948년, 가짜 약품을 유통한 사기 피해를 당해 서대문경찰서에 피소되는 곤혹을 치르자 결심을 굳힌다. 피해자가 직접 제약사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1949년 약방 2층에 12평짜리 시설을 꾸려 첫 제품 '다이아졸'을 생산했다. 분노가 사업의 씨앗이 된 셈이다.
성장과 위기
1950년, 충정로로 이사한 지 몇 달 만에 6·25 전쟁이 터졌다. 공장은 폐허가 됐다. 1951년 1·4 후퇴로 부산으로 내려간 이종근은 국제시장에 좌판을 펴고, 단발 정제기 단 1대로 보수동에 공장을 다시 세워 약을 만들었다. 사실상 노숙 창업 수준의 집념이었다. 1952년 16평짜리 땅에 2층 공장을 짓고, 1953년 휴전 후 영업망을 전국으로 넓혀, 1955년 서울 충정로로 복귀했다. 부산 피난 4년 만에 기틀을 다시 잡은 것이다.
진짜 반전은 1965년에 나온다. 당시 항생제 원료는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시절이었는데, 종근당이 신도림에 원료합성공장을 세우고 국내 최초로 항생제 원료 클로람페니콜 대량 합성에 성공했다. 1968년엔 이 클로람페니콜이 한국 제약업계 최초로 미국 FDA 인증을 받았고, 1969년엔 일본에 수출까지 했다. 4평 약방에서 시작한 지 20년도 안 된 시점에, 한국산 항생제가 일본으로 건너간 것이다.
1993년 이종근 회장이 73세를 일기로 별세하고, 장남 이장한이 경영을 이어받았다. 2세 경영의 성적표는 숫자가 말해준다. 취임 당시 매출 1085억원이었던 종근당이 지주사와 주요 계열사 합산 기준 2조 5000억원대로 성장했다. 30년 만에 25배다. 이 과정에서 숨은 공신 하나가 있다. 바로 락토핏이다. 2016년 이후 국내 프로바이오틱스 시장을 수년 만에 급성장시키며 카테고리 자체를 새로 만들어버렸다. 제약회사가 유산균 하나로 시장 판도를 바꾼 이야기다. R&D에 대한 집착도 남달랐다. 국내 임상건수 기준으로 5년 연속 1위를 기록했다.
지금 뭐 하는 회사
2025년 종근당의 연간 매출은 약 1조 6,924억원이다. 전년(1조 5,864억원)보다 늘었으나, 영업이익은 805억원으로 2023년(1,054억원), 2024년(1,016억원)에 이어 3년 연속 감소했다. 그 이유는 '케이캡' 때문이다.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로 매출의 선봉장 역할을 하던 케이캡 공동 판매 계약이 종료되면서 큰 구멍이 생겼다. Grandculture
대신 꺼낸 카드가 위고비다.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수요를 기록 중인 비만치료제 위고비의 국내 유통 및 공동 판매를 종근당이 맡았다. 2026년 1분기 별도 기준 매출 4,477억원, 영업이익 176억원을 기록했으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2.2%, 영업이익은 36.9% 늘어 반등 신호가 뚜렷하다. Hansbiz
그리고 진짜 베팅은 따로 있다. 2023년 11월, 글로벌 제약사 노바티스와 신약 후보물질 CKD-510에 대해 총 13억 500만 달러, 한화 약 1조 7천억 원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을 맺었다. 계약금 8,000만 달러(약 1,061억원)를 수령했고, 향후 개발·허가 단계에 따른 마일스톤 12억 2,500만 달러와 판매 로열티를 추가로 받는 구조다. 종근당 창사 이래 최대 기술수출이다. Saramin
CKD-510은 원래 희귀 신경질환인 샤르코마리투스병 치료제로 개발됐으나, 전임상에서 심방세동 부담 감소와 좌심실 기능 개선 가능성이 확인되면서 적응증을 심방세동으로 변경했다. HDAC6(히스톤탈아세틸화효소6)를 억제하는 기전으로, 기존 부정맥 치료제와 다른 접근법이어서 업계에서는 퍼스트인클래스, 즉 기존에 없던 기전의 신약으로 분류한다. 노바티스는 2025년 4분기 실적자료에서 CKD-510을 'PKN605'라는 프로젝트명으로 심방세동 적응증의 임상 2상 파이프라인으로 공식 제시했다. Company GuideEugenefn
여기서 멈추지 않고 종근당은 NRDO(신약 임상·사업화 전문) 방식의 자회사 아첼라를 세워 먹는 비만·당뇨 치료제, 이상지질혈증 치료제, 퇴행성 신경질환 치료제까지 개발 중이다. 2025년 연구개발비는 1,858억원으로, 매출 대비 비중이 11%에 달한다. 2023년 1,513억원, 2024년 1,574억원에서 가파르게 늘어왔다. 시가총액은 약 1조 1,857억원 수준이고, 상장 계열사는 종근당, 종근당홀딩스, 종근당바이오, 경보제약 4곳이다. 4평 약방이 4개 상장사가 된 이야기다. Hansbiz
투자 관점에서 보는 포인트
종근당의 구조를 보면, 안정적인 국내 처방약 매출 위에 위고비 같은 대형 도입 품목으로 외형을 키우면서, CKD-510을 포함한 신약 파이프라인이 장기 성장의 씨앗으로 깔려 있는 형태다. 케이캡 이탈로 수익성이 일시 눌린 것은 맞지만, 위고비 효과와 2026년 1분기 실적 반등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노바티스와의 기술수출 계약이 마일스톤 단계로 진행되면서 추가 수령금이 언제 들어오는지가 하나의 변수가 될 수 있다. 2025년 2분기 노바티스로부터 CKD-510 임상 2상 진입 마일스톤 500만 달러(약 69억원)를 수령한 바 있다. Wikipedia
다만 신약은 임상 실패 리스크를 항상 안고 있고, R&D 비용 증가로 수익성이 당분간 눌릴 수 있다는 점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매출이 늘어도 수익성이 개선되지 않는 구조가 3년 연속 이어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첼라 분사로 일부 R&D 비용이 자회사로 이전되는 효과는 있지만, 임상 단계 파이프라인들의 성패가 중장기 기업 가치를 결정할 핵심 변수다.
CKD-510, 위고비, R&D 집착 — 이 세 키워드가 지금 종근당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가장 잘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