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투자일기] 피로회복제 팔던 회사가 미국 FDA 보톡스를 따낸 사연

by 우노디야 2026. 8. 8.
반응형

곰 쓸개에서 출발해 세계 67개국에 보톡스를 파는 회사 — 대웅제약

대웅(大熊). 한자로 풀면 '큰 곰'이다. 그리고 이 이름은 우연이 아니다. 대웅제약의 간판 상품 '우루사'는 라틴어로 곰을 뜻하는 ursus(우르수스)에서 따왔다. 곰 쓸개의 약효 성분에서 출발한 제품을 앞세운 회사의 이름이 '큰 곰'이라니, 작명 센스가 예사롭지 않다. 그리고 이 회사가 지금 세계 무대에서 벌이고 있는 일이 더 드라마틱하다. 12부작 드라마로 만들어도 아깝지 않을 이야기다.


창업 스토리

대웅제약의 뿌리는 1942년 부산에서 일본인이 세운 가와이제약소(河合製藥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45년 해방 직후, 경남위생시험소에서 일하던 지달삼(1922~1983)이 이 일본인 소유 제약업체를 인수해 '조선간유제약공업사'로 새 출발을 했다. 이후 1947년 대한비타민화학공업사, 1961년 대한비타민산업(주)로 사명을 바꿨고, 같은 해 간장약 '우루사'를 출시했다.

대웅제약을 지금의 회사로 키운 인물은 창업주 고(故) 윤영환 명예회장(1934~2022)이다. 부산에서 선화약국을 운영하며 '약 잘 짓는 약국', '친절한 약국'으로 소문이 났던 그는 1966년 이 회사를 인수했다. 약국 하나의 성공이 결국 대웅제약의 새 출발점이 됐다.

그리고 우루사가 진화했다. 1974년 연질 캡슐 형태로, 1977년에는 국내 최초 연질 캡슐 자동화 대량생산 체제를 갖췄다. 1976년 국내 간장약 시장 점유율 50%를 넘어섰고, 1980년 매출 100억 원, 1981년 국내 의약품 판매 1위. 그리고 1978년 지금의 이름 '대웅제약'이 됐다.


성장과 위기

1982년 미국 일라이릴리와 합작해 글로벌 감각을 키우기 시작했다. 2001년에는 국내 혁신신약 2호 이지에프외용액을 허가받으며 R&D 기반 신약 개발사로 변신을 선언했다. 이 제품은 이후 인도, 이집트, 러시아 등 11개국에 수출됐다.

진짜 터닝포인트는 2014년에 찾아왔다. 보툴리눔 톡신 제제 나보타가 국내에 출시됐고, 5년 뒤인 2019년 동아시아 제약사 최초로 미국 FDA 품목허가를 획득했다. 유전자 조작 없이 천연 보툴리눔 독소를 정제한 '하이 퓨어 테크놀로지' 특허 기술을 앞세운 결과였다.

하지만 FDA 승인의 기쁨도 잠시, 경쟁사 메디톡스가 폭탄을 투하했다. 자사 전 직원이 보툴리눔 균주와 제조공정 기술문서를 대웅제약에 넘겼다며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제소한 것이다. 법정에는 메디톡스 측 화우·고원·원, 대웅제약 측 태평양·바른·율촌·인텔리콘 등 국내 최고 로펌 소속 변호사 40여 명이 총집결했다. 한국 제약 역사상 전례 없는 규모의 법정 드라마였다.

2020년 12월, ITC는 나보타에 21개월 수입 금지 명령을 내렸다. 대웅제약이 졌다. 그런데 그날 주식시장에서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패소한 대웅제약 주가가 30% 상한가를 쳤고, 승소한 메디톡스 주가는 5.6% 내렸다. 시장은 이 판결의 실질적 무게를 꿰뚫어보고 있었다. ITC가 균주 도용 주장은 인정하지 않고 제조기술 도용 일부만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정적인 역전이 찾아왔다. 미국 연방항소순회법원(CAFC)이 관련 소송을 기각하면서 ITC 최종 결정이 원천 무효화됐다. 미국에서의 전쟁은 사실상 대웅제약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검찰도 대웅제약에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단, 국내 민사소송은 아직 진행 중이다. 이 전쟁이 완전히 끝난 건 아니다.


지금 뭐 하는 회사

2025년 대웅제약은 연결 기준 매출 1조 5,708억 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10.4% 증가한 수치다. 영업이익은 1,967억 원으로 33% 늘었고, 당기순이익은 1,929억 원으로 726.3% 급증했다. 영업이익이 33% 오를 때 순이익이 726%나 튀었다는 건, 수익 구조에서 무언가 거대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신호다. 히트뉴스는 "영업외손익 개선 및 세금효과 반영"이 주요 원인이라 설명했다.

나보타는 2014년 국내 출시 이후 누적 매출 1조 원을 돌파했다. 2019년부터 2025년까지 연평균 57% 성장률을 유지했고, 2025년 단일 품목으로만 연매출 2,000억 원 이상을 달성했다. 미국에서는 '주보(Jeuveau)', 유럽에서는 '누시바(Nuceiva)'라는 이름으로 팔린다. 현재 전 세계 67개국에 허가를 획득하고 80여 개국에서 파트너십을 맺은 K-보톡스의 대표 주자다.

또 하나의 무기가 있다. 2022년 출시한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 펙수클루가 출시 3년 만에 국내외 연매출 1,000억 원을 돌파하며 블록버스터 대열에 합류했다. 기존 치료제의 단점인 느린 약효 발현과 식전 복용 제약을 개선한 3세대 P-CAB 계열 신약이다. 나보타와 펙수클루, 두 개의 엔진이 동시에 달리고 있다.


투자 관점에서 보는 포인트

대웅제약 이야기에서 눈여겨볼 지점은 '한 제품의 한계를 넘으려는 시도가 언제나 있었다'는 것이다. 우루사 하나로 업계 10위권을 만든 뒤, 나보타로 글로벌 무대에 올랐고, 펙수클루로 내수 신약 파이프라인까지 쌓았다. 소송이라는 거대한 리스크를 10년 가까이 짊어지면서도 매출과 이익이 동반 성장했다는 점은 기업 체력의 단면을 보여준다.

물론 국내 민사소송이 아직 남아 있고, 나보타의 글로벌 경쟁 강도는 갈수록 세지고 있다. 미국 파트너사 에볼루스의 가이던스 하향 조정으로 성장률 둔화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FDA 허가라는 진입장벽, 67개국 허가망, 그리고 자체 신약 파이프라인의 존재는 단순한 OTC 제약사와는 결이 다른 포지셔닝이다.

 

우루사, 나보타, 펙수클루 — 이 세 키워드가 대웅제약의 과거·현재·미래를 가장 잘 설명하는 언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