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카스 만드는 회사가 슈퍼항생제를 미국에서 먼저 팔았다는 사실
동아에스티 얘기를 꺼내면 열에 여덟은 이렇게 반응한다. "아, 박카스 회사?" 맞다. 근데 반만 맞다. 정확히 말하면 박카스는 동아에스티가 아니라 동아제약이 가져갔다. 2013년에 회사가 둘로 쪼개졌고, 박카스·드링크류는 동아제약이, 처방약·신약 R&D는 동아에스티가 맡았다. 그러니까 동아에스티는 박카스를 만들지 않는다. 그런데도 여전히 '박카스 회사'라고 불리는 건, 박카스 수출을 동아에스티가 담당하기 때문이다. 국내 판매는 동아제약, 해외 수출은 동아에스티. 같은 제품을 두 회사가 나눠 먹는 구조다.
더 황당한 건 이 회사의 뿌리다. 창업자가 약을 연구해서 시작한 게 아니다. 1932년 강중희라는 사람이 서울 종로에서 자기 이름을 걸고 '강중희 상점'을 차렸다. 의약품 도매상이다.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파는 사람으로 시작했다. 거기서 90년 넘게 굴러온 결과가 오늘의 동아에스티다. 이 과정에서 유리 회사도 인수했고, 화장품 브랜드도 론칭했고, 일본 과자 회사와 합작사도 세웠다. 제약사가 맞나 싶은 시절이 있었다는 얘기다.
창업 스토리
1932년, 강중희 회장이 종로 중학동에 세운 작은 도매상이 출발점이다. 의약품과 위생재료를 중간에서 유통하는 가게였다. 사명도 본인 이름을 그대로 붙였다. '강중희 상점.' 소박하다 못해 투박하다.
전쟁이 터졌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동아제약은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에 공장을 짓고 페니실린과 스트렙토마이신을 직접 생산하기 시작했다. 포탄 소리가 멈추지 않던 시절에 항생제를 만들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이다. 전쟁터에서 가장 필요한 게 항생제니까. 이때가 도매상에서 제조업체로 탈바꿈한 진짜 분기점이다.
그리고 1961년, 박카스가 나왔다. 처음에는 알약 형태였고, 1963년에 지금 우리가 아는 드링크 형태인 박카스-D가 출시됐다. 이름의 유래가 재밌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술과 추수의 신 '바쿠스(Bacchus)'에서 따왔다. 피로회복제에 술의 신 이름을 붙이는 발상. 지금도 그 이름을 쓰고 있으니, 60년짜리 작명이 된 셈이다.
1970년대부터는 문어발이 시작됐다. 1975년 라미화장품을 만들고, 1978년엔 연합유리를 인수했다. 유리 회사다. 의약품 용기를 직접 조달하겠다는 수직계열화 전략이었겠지만, 외부에서 보면 이상한 확장처럼 보인다. 미국 존슨앤드존슨과 합작사도 세우고, 브리스톨-마이어스 스퀴브 계열 합작사도 따로 차렸다. 글로벌 빅파마 두 곳과 동시에 합작을 돌리던 시절이 있었다. 이후 2013년 인적분할로 동아제약과 동아에스티로 쪼개지면서, 동아에스티는 전문의약품과 신약 R&D를 전담하는 회사로 독립했다.
성장과 위기
'국산 신약은 팔리지 않는다.' 한때 국내 제약업계의 불문율이었다. 동아에스티가 그 통념을 정면으로 박살냈다. 2005년, 발기부전 치료제 자이데나가 출시됐다. 비아그라가 이미 전 세계를 점령하고 있던 시기였다. 화이자, 일라이릴리, 바이엘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개발된 발기부전 치료제가 한국 회사 제품이 됐다. 출시까지 1997년부터 따지면 개발기간이 8년이다.
후발주자의 전략은 '부작용 줄이기'였다. 기존 발기부전 치료제의 단골 부작용인 두통 발생률이 경쟁 제품은 14~16%인데, 자이데나는 7%로 절반 수준이었다. 이 차이 하나로 버텼다. 출시 10년간 누적 판매액 약 1,390억 원. '안 팔린다'던 국산 신약이 1,000억 원을 넘긴 것이다.
더 극적인 반전은 슈퍼항생제 시벡스트로다. 슈퍼박테리아를 잡는 항생제인데, 미국 임상비용이 1,000억 원 이상 들어가는 걸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2007년 미국 트리어스에 기술을 통째로 팔았다. 기술료 650만 달러에 FDA 승인 이후 매출의 5~7%를 로열티로 받는 조건이었다. 돈이 없어서 직접 개발을 포기한 거였는데, 이게 전화위복이 됐다. 2014년 미국 FDA가 만장일치로 허가를 내줬고, 한국 제약사가 개발한 신약이 한국보다 미국에서 먼저 팔리는 기묘한 기록을 남겼다. LG생명과학의 팩티브(2003년 FDA 허가) 이후 11년 만에 탄생한 두 번째 미국 허가 국산 신약이었다.
박카스 수출도 단순하지 않다. 1980년부터 미국에 수출을 시작한 박카스는 지금 동남아 시장에서 상당한 존재감을 갖고 있다. 2025년엔 캄보디아-태국 국경 분쟁이 장기화되면서 현지 캔박카스 매출이 쪼그라들었다. 두 나라 군인들이 총을 쏘는데, 그 여파가 박카스 수출 실적에 찍혔다. 지정학 리스크가 드링크제 매출을 건드리는 묘한 상황이다.
지금 뭐 하는 회사
2025년 동아에스티 별도 재무제표 기준 연간 매출은 7,451억 원으로, 전년 대비 16.3% 증가하며 연간 최대 매출을 경신했다. 4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2.6% 증가한 2,004억 원으로, 분기 매출 최초 2,000억 원 돌파다.
그런데 수익성은 주춤했다. 영업이익은 원가율 상승과 R&D 비용 증가, 일회성 비용 발생으로 4분기가 적자 전환하며 전년 대비 16.1% 감소한 272억 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사상 최대인데 이익은 줄었다. 이게 지금 동아에스티가 선택한 구조다. 미래 먹거리를 만들기 위한 비용을 지금 쏟아붓고 있다는 신호다.
실적 성장을 이끈 건 성장호르몬제 그로트로핀(1,315억 원), 위식도역류질환 신약 자큐보(483억 원), 소화불량 치료제 모티리톤(387억 원), 성조숙증·전립선암 치료제 디페렐린(163억 원)이다. 그로트로핀 하나가 전체 매출의 17.6%를 차지하는 구조다.
해외사업 부문 매출은 전년 대비 12.8% 증가한 1,704억 원을 기록했다. 네스프 바이오시밀러 다베포에틴알파(267억 원), 스텔라라 바이오시밀러 이뮬도사(176억 원)가 성장을 뒷받침했다.
그리고 진짜 베팅이 있다. 비만 치료제 DA-1726이 글로벌 임상 1a상을 진행 중이며, MASH(대사이상 지방간염) 및 제2형 당뇨병 치료제 DA-1241은 글로벌 임상 2a상을 완료했다. ADC 전문 기업 앱티스를 인수해 차세대 신약 개발 역량도 확대 중이다.
슈퍼항생제를 만들고, 발기부전 치료제를 세계 네 번째로 개발하고, 이제는 비만·치매·면역항암제까지 파이프라인을 넓혀가고 있다. 의약품 도매상으로 시작한 회사가 90년을 버텨온 방식이 이렇다.
투자 관점에서 보는 포인트
매출이 사상 최대인데 영업이익이 줄었다는 구조가 핵심이다. R&D 투자를 지금 집중적으로 집행하고 있다는 뜻이다. 비만 치료제 DA-1726의 임상 진전이 가장 큰 주가 모멘텀이 될 수 있고, 그로트로핀 성장 지속성과 바이오시밀러 해외 확대도 함께 봐야 할 변수다.
다만 그로트로핀에 대한 매출 의존도가 높다는 점, 캄보디아-태국 분쟁 같은 지정학 리스크가 해외 매출에 직접 영향을 주는 구조도 리스크로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그로트로핀, DA-1726, ADC — 이 세 키워드가 지금 동아에스티의 다음 챕터를 설명하는 언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