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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일기] 크림 장사꾼이 UAE 유전 주인이 된 사연

by 우노디야 2026.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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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 장사꾼이 UAE 유전 주인이 된 사연

GS에너지라는 이름을 들으면 솔직히 잘 감이 안 온다. GS칼텍스는 주유소 간판으로 익숙한데, GS에너지는 뭔가 한 다리 건너 있는 느낌이다. 그런데 이 회사의 뿌리를 따라가다 보면 꽤 황당한 지점에서 출발한다는 걸 알게 된다. 출발점이 정유도, 석유도 아니다. 여성용 크림이다.

락희화학공업사. 지금의 LG그룹 시조다. 이 회사가 1940년대에 팔던 게 '동동구리무'라는 여성용 화장 크림이었다. 그 크림 회사가 훗날 대한민국 최초의 민간 정유사를 세웠다. 지금으로 치면 아모레퍼시픽이 SK에너지를 만든 것과 비슷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 흐름의 끝에 GS에너지가 있다.


창업 스토리

1966년. 박정희 정부는 제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밀어붙이는 중이었고, 핵심 과제 중 하나가 제2정유공장 건설이었다. 정부가 사업자 공모를 냈다. 손을 든 곳이 여럿이었는데, 최종 낙점은 럭키(지금의 LG화학)에 돌아갔다. 경쟁에서 떨어진 게 한국화약이었다. 당시로선 아쉬운 승부였다.

럭키는 1967년 5월, 미국의 칼텍스석유와 손을 잡고 호남정유를 설립한다. 합작 비율은 한국 측 50, 칼텍스 50. 공장 위치도 처음부터 여수가 아니었다. 비인, 녹산 등 세 곳이 후보지였고 최종 낙점이 전라남도 여수였다. 1967년 3월 착공해 1969년 6월 준공. 착공에서 완공까지 딱 2년. 개발도상국의 속도전이 이런 것이었다. 처음 정제 규모는 하루 6만 배럴이었다.

그런데 이 회사에는 창업 때부터 아주 독특한 구조가 있었다. 한국 측 대표이사 1명, 칼텍스 측 대표이사 1명. 두 나라 각 1명씩이 공동으로 회사를 이끌었다. 그리고 한국 측 경영을 담당한 건 럭키그룹의 구씨 집안이었는데, 사실 구씨 집안과 허씨 집안은 1941년부터 공동으로 락희화학을 창업한 사이였다. 구씨는 대외 경영 전반, 허씨는 재무·내부 살림. 이 동거가 무려 60년 넘게 이어진다. 한국 재계에서도 보기 드문 기이한 장기 동업이었다.


성장과 위기

1973년. 중동에서 포성이 울렸다. 제4차 중동전쟁과 함께 1차 오일쇼크가 터졌다. 원유를 못 구해 국내 정유공장들의 가동률이 60~70%로 뚝 떨어졌다. 그런데 호남정유만 달랐다. 여수공장 가동률이 94%였다. 합작사 칼텍스가 원유를 계속 공급해줬기 때문이다. 경쟁사들이 원유를 구하지 못해 공장 문을 반쯤 닫는 동안, 호남정유는 역대 최고 수준의 가동률을 찍었다. 위기가 반전이 된 순간이다.

그 이후로 설비 확장은 쉼 없이 이어졌다. 1972년 16만 배럴, 1978년 23만 배럴, 1981년 38만 배럴. 10년 만에 정제 능력이 6배 넘게 늘었다. 1983년에는 정유업계 최초로 2억 달러 수출을 달성했고, 1997년에는 업계 최초로 일본과 미국에 휘발유를 수출했다. 원유를 수입해서 정제해 다시 수출하는 가공무역의 첨단을 걸어간 것이다.

그리고 2005년, 거대한 분가가 벌어진다. 구씨와 허씨의 60년 동업은 싸움이 아닌 '질서 있는 논리'로 끝났다. LG그룹에서 GS그룹, LS그룹, LIG그룹이 각각 떠어져 나왔다. 허씨 집안이 들고 나온 핵심 자산이 바로 정유 사업이었다. LG정유는 곧 GS칼텍스로 이름을 바꿨고, 2012년 GS에너지가 출범하며 GS칼텍스 지분 50%를 보유한 에너지전문 사업지주회사로 자리를 잡았다. 이름이 네 번 바뀌는 동안 회사는 그렇게 지금의 모습이 됐다.

그런데 이 모든 스토리에서 하나 더 짚고 가야 할 게 있다. 호남정유·LG정유 시절, 이 회사가 실업 야구배구에서 9년 연속 우승을 했다는 사실이다. 배구계에서 '무적함대'로 불렸다. 정유 회사가 배구의 전설을 쓴 것이다. 의외도 이런 의외가 없다.


지금 뭐 하는 회사

GS에너지는 지금 단순한 정유 모회사가 아니다. 크게 네 축으로 돌아간다.

첫째는 정유·화학이다. GS칼텍스 여수공장은 단일 정유공장 기준 세계 4위 규모다. GS칼텍스는 2025년 매출 44조 6,302억 원, 영업이익 8,840억 원을 거뒀다.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61.3% 증가했다. 대한민국 하루 원유 소비량의 28%가 이 공장 한 곳에서 나온다. 한국에서 쓰는 기름 4분의 1 이상이 여수에서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2022년 기준 누적 정제량은 약 99억 배럴이다.

둘째는 전력·집단에너지다. GS파워를 통해 안양·부천 신도시에 전기와 열을 독점 공급한다. 청라에너지, 인천종합에너지 지분도 인수해 수도권 서남부 약 70만 가구에 열을 공급하는 네트워크를 갖았다. 정유 회사인 줄 알았더니 수도권 열 공급자이기도 하다.

셋째는 가스다. SK E&S와 50대 50으로 합작한 보령LNG터미널을 통해 충남 보령에서 연간 600만 톤 규모의 LNG를 저장·공급한다.

넷째가 요즘 가장 주목받는 자원개발이다. GS에너지는 UAE 아부다비 육상생산광구에 참여해 하루 약 5만 배럴, 40년간 약 8억 배럴의 원유 생산량을 확보했다. 이건 우리나라 유전개발 역사상 단일 사업 기준 최대 규모다. GS에너지 자원개발 부문도 유가 상승에 따라 영업이익이 증가했다. 그리고 2026년에는 한 발 더 나간다. ADNOC(아부다비 국영석유공사)가 주도하는 세계 최대 규모 가스층 개발 프로젝트에, 국내 기업 중 유일하게 GS에너지가 참여하게 됐다. 원유에서 천연가스로, 중동 에너지 영역을 더 넓히고 있는 것이다.

자산 규모도 빠르게 커졌다. 2020년 말 약 8조 9천억 원이었던 자산총액이 2023년 말 15조 원으로 3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뛰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이 모든 사업의 핵심인 GS칼텍스가 여전히 비상장이라는 것이다. 셰브론(옛 칼텍스)과의 합작 구조가 60년 가까이 유지되고 있어, GS칼텍스 주식을 직접 살 방법이 없다. 1967년에 맺은 계약의 여파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2026년 1분기 ㈜GS 연결 기준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9.9% 증가, 영업이익은 56.7% 증가, 당기순이익은 253.3% 증가했다. 2026년 상반기 누적 영업이익은 2조 9,760억 원으로 전년 대비 130.8% 증가했고, 당기순이익은 1조 9,587억 원으로 415.6% 급증했다.

크림 장사에서 출발해서 UAE 유전을 캐는 회사. 60년 동업이 만들어놓은 정유 제국. 그 중심에 GS에너지가 있다.

 

정유·화학, UAE 유전, 60년 합작 구조 — 이 세 키워드가 GS에너지를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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