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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일기] 구명정 만들던 회사가 글로벌 항암제로 FDA를 두드린 사연

by 우노디야 2026.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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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명정 만들던 회사가 글로벌 항암제로 FDA를 두드린 사연

HLB가 뭐 하는 회사냐고 물으면 대부분 '바이오 회사'라고 답한다. 그런데 이 회사의 원래 이름은 '이노GDN'이고, 주력 사업은 구명정 제조였다. 배에 달려있는 그 구명정 맞다. 그리고 그 전신은 1975년에 설립된 경일요트산업이다. 요트 → 선박 → 구명정 → 항암제. 이게 HLB의 변천사 전부다.

더 황당한 건 창업자 얘기다. 진양곤 회장은 원래 은행원이었다. IMF 외환위기 때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명예퇴직하고 호프집을 차렸는데, 그 호프집도 망했다. 그 사람이 지금 코스피 시총 상위권 바이오 그룹의 수장이다. 그리고 FDA에 세 번 도전해서 세 번 다 CRL을 받았는데, 2026년 7월 15일 핵심 걸림돌이 해소됐다는 발표를 내놓으면서 네 번째를 향해 달리고 있다.


창업 스토리

진양곤 회장은 1966년 전북 전주 출생이다. 원광대 법학과를 나와 연세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를 받았고, 부산은행과 평화은행을 거쳤다. 누가 봐도 전형적인 엘리트 은행원 코스다. 그런데 1997년 IMF가 터진다.

보증을 잘못 선 게 화근이었다. 명예퇴직 후 차린 호프집도 얼마 못 가 문을 닫았다. 그러나 여기서 이 사람은 포기 대신 방향을 튼다. 1998년 컨설팅 회사 '제이앤리파트너스'를 세웠고, 소규모 기계부품 회사 컨설팅으로 입소문을 탔다. 2004년에는 투자회사 '골든라이트'를 설립해 M&A 시장에 뛰어들었다.

법학과 출신 은행원이 컨설팅을 하다 M&A로 밥벌이를 하게 된 셈이다. 바이오와는 전혀 관계없는 이력이다. 그런데 이게 나중에 강점이 됐다. 과학자나 의사 출신 창업자들이 놓치기 쉬운 '돈과 구조의 논리'를 진 회장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2007년 골든라이트는 구명정 제조사 '현대라이프보트'를 인수했다. 이어 2008년에는 전자부품회사 하이쎌과 구명정 제조사 이노GDN을 잇달아 사들였다. 이노GDN이 바로 지금의 HLB다. 그리고 인수 과정에서 진 회장은 이노GDN이 투자하고 있던 미국 바이오 회사 하나를 발견한다. 리보세라닙을 개발하던 엘레바테라퓨틱스였다.

구명정 회사를 사려다 항암제 판권을 건드린 남자. 이게 HLB 창업 스토리의 핵심이다. 처음부터 바이오를 목표로 한 게 아니었다. 우연이 운명을 만든 케이스다.


성장과 위기

이노GDN 인수 이후 진양곤 회장은 선박 사업을 유지하면서도 바이오 쪽에 끊임없이 자원을 쏟아붓는다. 2019년에는 엘레바테라퓨틱스를 HLB의 100% 자회사로 편입하며 리보세라닙의 완전한 지배권을 확보했다.

2022년 유럽종양학회(ESMO)에서 글로벌 임상 3상 'CARES-310' 결과가 공개되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리보세라닙과 캄렐리주맙 병용 요법의 전체 생존기간(OS)은 23.8개월이었다. 기존 표준 치료제 소라페닙 15.2개월, 로슈의 티쎈트릭+아바스틴 19.2개월, BMS의 옵디보+여보이 23.7개월. 글로벌 빅파마의 최신 간암 치료제를 모두 앞선 수치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간암 치료제 시장은 연평균 17.9% 성장률로 확대되어 2030년에는 약 98억 달러(약 13조 원) 규모에 달할 전망이다.

그러나 2024년 5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온다. FDA로부터 1차 CRL을 수령한 것이다. 허가를 기대하며 미국에 영업인력 100여 명을 채용까지 해놨는데, FDA가 문을 닫아버린 것이다. 주가는 하한가, 시총은 하루 만에 수조 원이 증발했다.

이 CRL의 이유가 약의 효능 문제가 아니었다. 병용 투여하는 캄렐리주맙을 생산하는 중국 항서제약의 제조·품질관리(cGMP) 문제였다. 2025년 3월 2차 CRL도 마찬가지였다. 약 자체는 두 번 모두 문제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2026년 1월 세 번째 도전을 감행한다. 엘레바와 항서제약이 각각 NDA와 BLA를 재제출했고, FDA는 2026년 7월 9일(현지시간) 세 번째 CRL을 발행했다. 이번에도 원인은 항서제약 제조시설의 cGMP 지적사항이었다. 세 번 연속으로, 모두 같은 이유였다.

그런데 여기서 극적인 반전이 일어난다. CRL 수령 불과 6일 만인 7월 15일, FDA가 항서제약 리보세라닙 원료의약품 제조시설(진차오 사이트) 실사를 자발적 시정 조치(VAI)로 최종 종결했다. HLB그룹은 "사실상 CRL 사유가 즉시 해소됨에 따라 FDA와 신속히 협의해 신약 승인 절차가 조속히 재개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7월 3일 별도 실사를 받은 리보세라닙 완제의약품 제조시설은 Form 483에 따른 보완 작업을 진행 중이다. 핵심 걸림돌 하나가 제거됐지만, 완제 제조시설이라는 또 다른 변수가 남아 있다.


지금 뭐 하는 회사

오늘날 HLB는 단순한 제약사가 아니다. 진양곤 회장이 이끄는 HLB그룹은 제약·바이오를 주축으로 코스피 1개, 코스닥 9개 등 총 10개 상장사를 포함해 60개 가까운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2023년에는 선박 부문을 'HLB이엔지'로 물적분할해 사실상 완전한 바이오 기업으로 전환했다.

리보세라닙 외에도 주목할 파이프라인이 있다. 담관암 치료제 리라푸그라티닙은 전체 생존기간 중앙값 22.8개월, 객관적 반응률(ORR) 47%를 기록해 경쟁약물을 압도하는 수치를 나타냈다. 담관암 치료제 FDA 허가 결과는 2026년 9월 결정될 전망이다.

두 품목 모두 허가를 획득할 경우 HLB는 항암제 개발에 착수한 지 약 20년 만에 첫 상업화 성과를 거두게 된다. 업계 전문가들은 리보세라닙이 FDA 승인을 받을 경우, 한국 바이오 기업이 주도한 항암 신약이 글로벌 메이저 고형암 시장을 뚫어낸 첫 사례가 될 수 있다고 평가한다.


투자 관점에서 보는 포인트

핵심은 제조 문제의 완전한 해결 여부다. 원료의약품 제조시설이 VAI로 종결되면서 큰 고비를 넘긴 것은 맞지만, CRL 사유가 모두 해소됐다고 단정할 단계는 아니다. 완제 제조시설 실사 결과와 리보세라닙 NDA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해야 한다.

세 번의 CRL에서 매번 드러난 패턴은 명확하다. 약은 좋다. 문제는 공장이다. 그리고 그 공장이 중국 항서제약 소유라는 것, 미중 갈등이 심화되는 지정학 환경과 맞물린다는 것이 구조적 리스크다. 항서제약 의존에서 벗어나는 대안 마련 여부가 장기적인 변수다.

긍정 측면은 수치가 든든하다는 것이다. 간암 임상 3상 역사상 가장 긴 생존기간, 란셋 게재, 2026년 ASCO에서 리보세라닙 관련 연구 8건 채택. 데이터 자체의 신뢰성은 글로벌 기준으로도 충분히 검증됐다.

호프집 망한 은행원이 만든 회사가, 구명정 공장 안에서 항암제를 꺼냈다. 세 번 차인 뒤에도 6일 만에 반전 카드를 내놨다. 포기를 모르는 구조인지, 집착인지는 결과가 판가름할 것이다.

리보세라닙 데이터, 제조 문제 해소 여부, VAI 이후 완제 시설 — 이 세 키워드가 지금 HLB를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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