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명의 날 아침, 숫자들은 최악의 자리에 있다.
WTI 105.86달러. 브렌트 108.61달러. 트럼프의 중재 언급으로 꺾이는 듯했던 유가가 다시 급등했다. 10년물 4.996%. 5%에 정확히 붙어서 FOMC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30년물 5.364%. 2007년 이후 최고치를 다시 경신했다. S&P500 7,585. 나스닥 25,981. 코스피는 6,627까지 밀렸다. 이틀간 280포인트 하락이다.
오늘 밤(한국시간 내일 새벽) 연준이 결정한다. 인상 확률 70%. 시장은 이미 인상을 치른 가격에 서 있다. 2년물 3.960%. 기준금리 위로 100bp 이상이다. 문제는 25bp가 아니라 점도표와 기자회견이다. "이번이 마지막"이면 안도가, "추가 대응"이면 한 번 더 진통이 온다.
원달러는 1,362원으로 반등했다. 두 달 만에 원화가 눈에 띄게 약해진 첫날이다. FOMC 앞 달러 수요와 위험 회피가 겹쳤다. 1,340원대의 철옹성이 흔들린 것 자체가 오늘 시장의 긴장도를 말해준다.
그런데 같은 날 나온 수요 뉴스가 이 공포와 정면으로 부딪힌다.
JP모건이 2027년 미국 하이퍼스케일러 설비투자를 1조 5,230억 달러로 전망했다. 올해 대비 70% 증가다. 아마존·알파벳·메타가 주도한다. 7월 시장을 무너뜨렸던 질문이 "CAPEX가 지속되는가"였다. 두 달 반이 지난 지금, 대형 IB의 공식 전망은 지속이 아니라 70% 가속이다. 그리고 알파벳(420달러)·아마존(365달러)·메타(820달러)에 일제히 비중확대를 붙였다.
1조 5,230억 달러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따라가 보면 답은 한국이다. 메모리, HBM, 기판, 전력기기, 서버. 그 물길의 실물 증거가 같은 날 국내 뉴스로 쏟아졌다.
삼성전자가 미국 테일러팹을 가동해 22조원 규모 테슬라 칩 양산에 착수했다. 파운드리의 흑자전환 논리가 계약과 가동으로 확인됐다. 두산은 AI 반도체 기판 소재에 8,000억원 투자를 결정했다. 후공정·기판이 다음 병목이라던 흐름 그대로다. DB하이텍은 레거시 파운드리 수요 폭발로 이달에만 23% 올랐다. AI가 첨단만이 아니라 레거시 공정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HD현대는 조선을 넘어 AI 데이터센터의 육·해상 전력시장 공략을 선언했다. 해상 발전소 추진이다. 전력이 병목이면 바다 위에 발전소를 띄우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웨스팅하우스 지분 15% 인수를 추진하며 원전 동맹을 굳히고 있다. 한미 원전 8기 합의의 후속이다. 조선·원전·기판·파운드리. 한국 산업의 전 전선이 AI 인프라 쪽으로 정렬을 마쳤다.
그리고 흥미로운 증언이 하나 나왔다. OpenAI와 앤트로픽이 대중에 공개하지 않은 2세대 더 진보된 AI를 보유 중이라는 데이비드 삭스의 인터뷰다. 속도조절 합의의 실체가 여기 있다. 기술은 이미 앞서 가 있고, 공개 속도만 조절한다. 인프라 수요는 공개된 모델이 아니라 개발 중인 모델이 만든다. 말은 속도조절, 행동은 사상 최대 계약이라는 이중성의 근거다.
오늘 밤의 관전법을 정리한다.
첫째, 인상 자체는 소음이다. 시장 금리가 이미 두 번 치렀다. 둘째, 점도표의 추가 인상 점이 몇 개인지가 신호다. 셋째, 워시의 입에서 유가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지 본다. 이번 인상의 명분이 에너지라면, 연준 스스로 "유가가 꺾이면 우리도 멈춘다"는 출구를 열어둘 수 있다.
그리고 하나 더. LNG 현물 가격 폭등으로 겨울 난방비 부담이 예고됐다. 에너지 인플레는 겨울까지 이어질 변수다. 유가와의 전쟁이 이번 한 번의 인상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균형 있게 봐야 한다.
코스피 6,627. 선행 PER은 5배대 깊숙이 들어왔다. 두 달 반 동안 다섯 번의 관문에서 반복된 공식이 있다. 공포가 배수를 누르는 동안 이익이 분자를 키웠고, 관문이 지나면 그 간극이 한 번에 좁혀졌다.
한 가지만 묻는다.
오늘 밤 연준은 유가 때문에 금리를 올린다. 내년 하이퍼스케일러는 70% 더 투자한다. 하나는 비용의 언어고, 하나는 성장의 언어다.
역사상 금리 인상이 슈퍼사이클을 죽인 적은 있어도, 공급이 부족한 슈퍼사이클을 죽인 적은 없다. 2028년까지 완판된 메모리와 5%의 금리. 오늘 밤 이후 시장은 어느 쪽의 언어로 다시 말하기 시작하는가.
내일 아침, 그 첫 문장을 함께 확인하자.
※ 이 글은 정보 제공 목적이며, 특정 종목에 대한 매수·매도 추천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과 책임은 본인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