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급의 결이 바뀌었다.
외국인이 삼성전자를 1.1조원 순매수하고 SK하이닉스를 6,700억원 순매도했다. 같은 반도체 안에서 자금이 자리를 옮긴 것이다. 이탈이 아니라 로테이션이다. 이 구분이 중요하다. 한국 반도체를 파는 게 아니라, 한국 반도체 안에서 순서를 다시 짜고 있다.
이유는 두 겹이다. 첫째, 삼성전자 특별배당 기준일이 임박했다. 배당을 받으려는 매수가 몰리는 시기다. 둘째, HBM 점유율 역전 전망이다. 삼성 3분기 1위(42~44%) 전망이 컨센서스가 되면서, 그동안 하이닉스에 쏠렸던 프리미엄이 재배분되고 있다. 하이닉스 쪽에는 솔리다임의 미국 동부 낸드 공장 검토에 따른 CAPEX 부담 우려도 얹혔다. 다만 하이닉스 자사주 매입 진도가 60%에 도달해 있다. 외국인 매도를 회사가 받아내는 구조다. 40조 소각의 실탄이 아직 40% 남았다.
그리고 상징적인 방문이 있었다. 스탠리 드러켄밀러의 한국 방문이다. 두산, SK하이닉스, 삼성전자. 에너지와 반도체 기업군이 동선이었다. 소로스의 오른팔이었고 매크로의 전설로 불리는 인물이 금리 공포가 한창인 시점에 서울에 왔다. AI 투자 축소 논란의 와중에 그의 발이 향한 곳이 답이다. 빅테크가 금리를 뒤로하고 전력과 인프라 확보에 움직이는 것, 그 흐름의 현장 실사다.
수출 데이터가 그 실사를 뒷받침한다.
DRAM/HBM 수출이 500% 급증했다. 반도체가 수출 4대장의 선두에서 화장품·의약품과 함께 한국 수출의 구조를 바꾸고 있다. 3분기 하이닉스 선적 지연이 해소되며 물량이 터져 나오는 구간과 겹친 숫자다.
장비 쪽에서는 장기 시간표가 나왔다. 웨이퍼 팹 자본지출이 2030년까지 2,000억 달러에 도달한다는 전망이다. ASML, Lam, AMAT, KLAC 등 5개 장비사가 그 75%를 가져간다. 공급이 2028년에야 온다는 것은, 뒤집으면 2030년까지 장비 발주가 이어진다는 뜻이다. 후공정 테스트의 어드반테스트가 업종 내 강세를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팹을 지으면 장비가 들어가고, 장비가 돌면 테스트가 필요하다. 국내 소부장의 시간표가 이 사이클에 정확히 물려 있다.
지정학에서는 그린란드 안보협정 3자 서명식이 내일(화) 열린다. 지난주 예고된 대로다. 북극 패권의 공식화다. 영국은 사우디에 후티 대응 군사지원 합의가 임박했다. 중동의 낮은 긴장은 유지되지만, 유가를 다시 밀어올릴 동력은 약해져 있다.
지난 금요일 기준 시장의 위치를 확인한다. 코스피 6,800대, 원달러 1,340원대, 유가는 100달러 아래, 10년물은 4.8%대. FOMC 관문 통과 이후의 안정 구도가 유지되고 있다. 이번 주는 시진핑 관련 행사와 걸프 정상회담, 유엔 총회가 이어지는 지정학 주간의 본편이다. 블로그 트렌드에 "시진핑 결석" 언급이 나온 만큼, 백악관 만찬의 성사 여부 자체가 첫 변수가 됐다.
한 가지만 묻는다.
드러켄밀러는 서울에 왔고, 외국인은 한국 반도체 안에서 의자를 바꿔 앉았고, 장비 발주는 2030년까지 예약됐다.
7월의 외국인은 한국을 역대 최대로 팔았다. 9월의 외국인은 한국 안에서 종목을 고르고 있다. 두 달 사이 질문이 "살 것인가"에서 "무엇을 살 것인가"로 바뀐 것이다.
시장의 질문이 한 단계 내려왔다는 것. 그것이 바닥이 지났다는 가장 조용한 증거 아닌가.
※ 이 글은 정보 제공 목적이며, 특정 종목에 대한 매수·매도 추천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과 책임은 본인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