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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일기] 청과물 도소매에서 시총 1,000조까지 — 삼성전자가 걸어온 길

by 우노디야 2026.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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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하면 반도체 대기업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청과물·건어물 도소매로 시작했다. 더 놀라운 건 창업자 이병철이 20대 후반에 이미 200만 평 대지주였다가 전재산을 날렸다는 사실이다. 부농 아들로 태어나 와세다대학까지 다니던 그가 어떻게 한량 생활을 하다가 결국 재계 최상위권 대기업을 만들어냈을까?


창업 스토리 이병철은 1910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났다. 와세다대학에서 공부하다 각기병으로 중도 포기한 후, 조선식산은행에서 담보 대출을 받아 무모한 차입 경영에 나섰다. 놀랍게도 20대 후반에 200만 평의 대지주가 되었다. 하지만 1937년 중일전쟁이 터지면서 모든 게 무너졌다. 토지 담보 대출이 중단되자 시가보다 낮은 가격에 땅을 팔아넘겨야 했고, 협동정미소와 운송회사까지 처분해 겨우 빚을 청산했다. 전재산을 날린 이병철이 1938년에 새로 시작한 게 바로 삼성상회다.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장차 독립된 국가를 세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경제적 힘을 기르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청과류·건어물·밀가루 도소매부터 다시 시작했다.


성장과 위기 삼성전자는 1969년 직원 36명으로 시작했다. 당시 금성사 등이 반발하자 "TV, 라디오, 냉장고 등을 극히 일부만 국내에 공급하고 나머지는 전량 수출한다"는 조건으로 겨우 사업허가를 받았다. 진짜 운명을 바꾼 순간은 1983년 2월 8일이었다. 이병철이 도쿄 오쿠라호텔에서 반도체 사업 진출을 결심한 날이다. 그는 홍진기 중앙일보 회장에게 국제전화를 걸어 "누가 뭐래도 삼성은 반도체 사업을 할 것이니 이 사실을 내외에 공표해 주시오"라고 선언했다. 당시 삼성반도체는 가전제품용 LSI(고밀도집적회로)를 간신히 생산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NEC를 비롯한 일본 주요 기업들에 기술 협력을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당하자, 이병철은 "대체 반도체가 뭐길래 이렇게 나오나"하며 의문을 가졌다. 결국 실리콘밸리 산호세에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미국의 마이크론, 일본의 샤프와 기술계약을 체결했다. 1983년 11월 7일 드디어 64K D램 개발에 성공했다. 개발진들은 실험실에서 뛰쳐나와 "만세"를 외치며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지금 뭐 하는 회사 2026년 2월 4일, 삼성전자가 국내 기업 최초로 시가총액 1,000조 원을 넘었다. 1975년 상장 이후 51년 만의 기록이다. 2025년 4분기 영업이익 대부분이 반도체에서 나왔다. 현재는 AI 반도체의 핵심인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에 주도권을 빼앗긴 상황이다. 올해 HBM 매출이 전년 대비 큰 폭으로 증가할 전망이지만, 시장점유율은 29%로 2위에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 흥미로운 건 1983년 64Kb D램과 현재 32Gb DDR5 D램을 비교하면 용량이 50만 배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1975년 2억 원에 불과했던 반도체 매출이 2022년 98조 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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