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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일기] '일어나는 아시아' — 자전거 부품 공장에서 100조 매출까지, 기아 80년

by 우노디야 2026.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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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라는 사명이 '일어나는 아시아'를 뜻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자로 일어날 기(起), 버금 아(亞)를 조합한 이름이며, 동시에 영어 'Gear(기어)'의 일본식 발음에서 비롯됐다는 설도 있다. 자동차 회사 이름에 기어가 들어있는 셈이다. 1997년 한국 경제를 흔든 기아그룹 부도 사태부터 독일 디자이너 피터 슈라이어가 불러온 반전까지, 자전거 부품 공장에서 시작해 2024년 107조 매출을 달성한 기아의 80년 스토리는 한국 산업사의 축소판이다.


창업 스토리

1944년 12월 11일, 해방 직전 경성부 영등포에서 '경성정공'이라는 작은 공장이 문을 열었다. 창업자 김철호는 1922년 10대의 나이에 일본 오사카로 건너가 20년 넘게 기계 산업 기술을 익힌 인물이었다. 1930년 삼화정공을 인수해 자동차와 자전거 부품을 만들며 기술과 수익을 동시에 쌓았다. 6·25 전쟁으로 부산에 피란한 와중에도 멈추지 않았다. 1952년 국내 최초의 자전거 '3000리호'를 출시하며 사명을 '기아산업'으로 변경했다. 지금의 삼천리자전거가 여기서 출발했다. 1961년 일본 혼다와 기술 제휴를 맺어 오토바이 'C-100'을 생산했고, 1962년에는 삼륜트럭 'K-360'으로 자동차 산업에 본격 진입했다. 'K-360'은 '딸딸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국민들 곁에 자리잡았다.


성장과 위기

1974년 마쓰다 패밀리아를 기반으로 한 세단 '브리사'로 본격적인 자동차 회사의 형태를 갖췄다. 소형 승합차 봉고는 '봉고신화'라는 말을 낳으며 기아의 핵심 수익원이 됐다. 1973년 창업자 김철호에 이어 장남 김상문이 2세 경영을 시작했고, 사원 출신 김선홍이 사장을 거쳐 회장까지 오르며 전문경영인의 원조로 꼽혔다. 그러나 1997년 파국이 찾아왔다. 1990년대 아시아자동차·기아특수강·건설업 등에 공격적으로 투자했으나 모두 예측을 빗나갔다. 트럭과 철강은 공급 과잉, 부동산은 악성 미분양으로 자금이 묶였다. 자동차를 일시불로 구매하면 30% 할인하는 프로모션까지 감행했지만 현금 부족을 막지 못했다. 구내식당에서 밥이 끊겼다. 1998년 기아차는 6조 6,500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고, 분식회계로 가려져 있던 4조 5,000억 원의 누적 적자까지 드러나며 천문학적 부실이 폭로됐다.


지금 뭐 하는 회사인가

현재 기아는 완전히 다른 회사다. 2024년 연결 기준 매출액 107조 4,488억 원, 영업이익 12조 6,671억 원을 기록하며 연간 기준 사상 첫 100조 원대 매출을 달성했다. 도매 판매 308만 9,300대로 역대 최다 판매량 기록도 세웠다. 차종별로는 스포티지가 글로벌 1위 판매량을 기록했고, 셀토스와 쏘렌토가 뒤를 이었다. SUV가 기아 판매의 중심축으로 자리잡은 상황이다. 2025년 판매 목표는 321만 6,000대, 매출 전망은 112조 5,000억 원이다. 현재 시가총액은 약 36조 원으로 코스피 시총 7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투자 포인트

기아의 가장 큰 변곡점은 2006년 피터 슈라이어의 영입이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삼고초려 끝에 합류한 이 독일 디자이너는 K시리즈 패밀리룩을 완성하며 브랜드 정체성을 재정립했다. 폭스바겐그룹 회장이 "피터 슈라이어를 놓친 것이 평생의 후회"라고 털어놓을 만큼 뛰어난 인재였다. 1944년 자전거 부품 공장에서 출발해 부도 위기를 딛고 100조 매출을 달성한 기아의 이야기는 사명 그대로 '일어나는 아시아'를 보여준다. 디자인 혁신과 글로벌 확장이 맞물린 이 구조가 앞으로도 브랜드 가치와 기술력을 기반으로 한 성장 동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가 중장기 투자 관점의 핵심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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