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셀트리온 서정진 회장이 1999년 창업 초기 명동 사채시장에서 신체포기각서를 쓰고 자금을 빌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자살까지 생각할 만큼 막막했던 시절, 미국에서 던킨도너츠 하나로 며칠을 버텼고, 같은 종이컵에 커피를 리필만 받아 마시다 종업원이 불쌍히 여겨 새 컵을 건넸다는 일화는 현재 코스피 시총 8위 기업의 과거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극적이다. 더 놀라운 것은 바이오 회사를 창업하면서 창업 멤버 중 생물학 전공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점이다. '바이오가 유망할 것 같다'는 직감 하나로 시작해 1년간 40여 개국을 돌며 해외 바이오 전문가들을 만나 공부했다.
창업 스토리
서정진은 1957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났다. 건국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했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낮에는 공부하고 밤에는 택시를 몰며 학비를 벌어야 했다. 1983년 삼성전기에 입사해 직장 생활을 시작했고, 한국생산성본부를 거쳐 1991년 대우자동차로 옮겼다. 그러나 대우그룹 해체로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었다. 1999년 12월 31일 사표를 내며 퇴직금도 포기했다. 장모에게 "뭘 먹고 살려고 하느냐"는 핀잔을 들은 것이 창업의 직접적 계기가 됐다고 알려져 있다. 대우자동차 출신 동료 10명과 함께 '넥솔'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했다. 서정진은 "후배 5명이 중국음식점이나 김밥 장사를 하는 꼴을 보기 싫어서 창업했다"고 밝혔다. 회사명 셀트리온은 길잡이별 '트리온스'에 세포를 뜻하는 '셀'을 조합한 것으로, 바이오산업의 길잡이가 되겠다는 의미다. 로고는 서정진이 직접 제작했다.
성장과 위기
2004년 에이즈 백신 개발 프로젝트의 3상 임상시험이 전부 실패하며 첫 번째 큰 위기가 찾아왔다. 일반적인 기업이라면 규모를 축소했겠지만 셀트리온은 오히려 투자를 확대했다. 생산설비를 먼저 갖추고 CMO 사업으로 기술을 축적한 뒤 의약품 개발에 나서는 역발상 전략이었다. 2006년에는 존슨앤드존슨의 레미케이드 바이오시밀러 '램시마' 개발로 사업 방향을 과감히 전환했다. 당시 바이오시밀러는 생소한 개념이었고, 임상 경험 없는 회사가 글로벌 임상을 수행할 수 있겠냐는 의구심이 팽배했다. 2013년에는 공매도 세력의 집중 공세로 극심한 압박을 받았다. 432 거래일 중 412일 간 공매도가 지속됐으며, 이 기간 시가총액이 하루 만에 42% 증발하기도 했다. 서정진은 여의도 63빌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분 매각 의사까지 밝히며 사태의 심각성을 공개적으로 토로했다.
지금 뭐 하는 회사인가
셀트리온은 현재 코스피 시총 8위 규모인 약 39조 원의 바이오 제약회사다. 2024년 매출 3조 5,573억 원, 영업이익 4,920억 원을 기록했으며 4분기에는 단일 분기 매출 1조 원을 처음으로 돌파했다. 주력 제품 램시마는 2017년 연간 1조 원 이상 처방된 첫 국산 의약품이 됐고, 2024년에도 1조 2,680억 원을 기록하며 전체 매출의 35.6%를 차지했다. 현재 바이오의약품 11개 제품 라인업을 갖췄으며, 2030년까지 총 22개 바이오시밀러 포트폴리오 완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송도 본사에는 1조 2,000억 원을 투입해 4·5공장을 동시 건설 중이다. 완공 시 생산 능력은 기존 31만 6,000리터에서 57만 리터로 확대된다.
투자 포인트
셀트리온의 가장 뚜렷한 강점은 바이오시밀러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선구자 지위다. 고가 바이오 의약품의 특허 만료와 함께 저가 대체재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며, 현재 개발 완료한 11개 제품의 글로벌 시장 규모만 150조 원에 달한다. 다만 공매도 이슈가 반복적으로 부각되는 점, 주주 결집도가 높아 시장 변동성이 크게 작용하는 점은 함께 고려해야 할 변수다. 장기적으로는 신약 파이프라인이 얼마나 성공적으로 상용화되느냐가 기업 가치의 핵심 분기점이 될 것으로 분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