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카오톡을 쓰지 않는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려운 시대다. 대한민국 국민 메신저로 자리잡은 카카오톡의 창업자 김범수가 한때 PC방 사장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IMF 직후 자금난에 허덕이던 시절 그가 선택한 돌파구가 바로 PC방 창업이었으며, 그 경험이 훗날 한게임의 성공 비결로 이어졌다.
창업 스토리
김범수는 1966년 전남 담양의 가난한 농촌 가정에서 태어났다. 일곱 식구가 단칸방에서 살아야 할 만큼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가족 중 유일하게 대학에 진학했다.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뒤 삼성SDS에 입사해 현 NHN의 이해진 의장과 동기로 일했다. 1994년 PC통신 서비스 '유니텔' 개발에 참여하며 기술 개발부터 기획·설계·유통까지 거의 모든 영역을 담당했다. 그러나 1998년 돌연 사표를 제출하고 창업에 나섰다. 개발 대행으로 근근이 버티던 그는 유니텔에서 진행한 O/X 퀴즈 이벤트에 7만여 명이 몰렸던 경험을 떠올렸다. 온라인 게임에 대한 수요를 직감한 그는 바둑·장기·고스톱 같은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다.
성장과 위기
초기에는 순탄하지 않았다. 커뮤니티 포털 네띠앙에서 서비스를 시도했지만 성과가 없었고, 1999년 네띠앙은 한게임과의 합병 제안마저 거절했다. 네띠앙은 훗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전환점은 PC방 사업에서 나왔다. 2억 4,000만 원을 투자해 한양대 앞에 국내 최대 규모 PC방을 열어 성공을 거둔 뒤, 그 기반 위에 혁신적인 마케팅을 시도했다. PC방 관리 프로그램을 무료로 제공하는 대신 한게임을 초기 화면으로 설정하는 조건을 내건 것이다. 당시 PC방 초창기라 유료로도 구하기 어려웠던 관리 프로그램을 무상으로 제공하자 PC방 사장들의 호응이 컸고, 한게임은 오픈 3개월 만에 회원 100만 명을 달성했다. NHN에서 공동대표로 5년 이상 회사를 이끈 김범수는 2007년 돌연 퇴사했다. NHN USA 대표 발령을 받은 지 8개월 만에 사표를 낸 그는 40세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떠나 1년간 '가족 안식년'을 보냈다.
지금 뭐 하는 회사인가
3년의 재충전을 거쳐 2010년 3월 김범수는 아이폰용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을 출시했다. 미국에서 아이폰을 접한 뒤 모바일 시대의 도래를 직감한 결과였다. 초기에는 매달 10억 원 이상의 서버 비용이 나갔지만 수익은 전무했다. 개인 자금이 고갈되는 상황에서 중국 텐센트의 투자를 유치해 위기를 넘겼고, 카카오 게임을 통해 메신저에서 수익을 창출하는 세계 최초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냈다. 현재 카카오톡의 월간 활성 이용자는 4,800만 명을 넘어서며 대한민국 점유율 94.4%를 기록하고 있다. 카카오의 현재 시가총액은 약 16조 2,000억 원 수준이다. 최근 SM엔터테인먼트 시세조종 혐의로 기소됐던 김범수 의장은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투자 포인트
카카오의 가장 큰 자산은 국민 메신저라는 독보적 지위다. 전 국민이 사용하는 플랫폼을 보유한 기업은 흔하지 않다. 그러나 최근 1년간 시가총액이 8조 7,000억 원 감소하는 등 주가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챗GPT 포 카카오가 출시 10일 만에 200만 명을 돌파한 사례에서 나타나듯, AI 영역에서의 기술 결합이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가 중장기 투자 판단의 핵심 변수다. 법적 리스크 해소와 플랫폼 독점력 유지 여부를 함께 점검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