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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일기] 덩샤오핑이 "박태준을 수입하겠다"고 했다 — 포스코 창업자의 진짜 이야기

by 우노디야 2026. 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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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중국의 덩샤오핑이 일본 제철소를 시찰한 뒤 "중국에 이런 제철소를 지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일본 회장은 "불가능하다"고 답했고, 그 이유를 묻자 "중국에는 박태준이 없지 않으냐"는 말이 돌아왔다. 덩샤오핑은 "그렇다면 박태준을 수입하면 되겠군요"라고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 박태준은 포스코 창업자임에도 포스코 주식을 단 한 주도 받지 않았으며, 말년 병원비를 자녀들이 대신 낼 만큼 재산을 남기지 않은 인물이었다.


창업 스토리

박태준(1927~2011)은 부산 기장군의 작은 어촌에서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운명적 만남은 군 시절부터 시작됐다. 1948년 남조선경비사관학교에 입교했을 때 제1중대장이 박정희 대위였다. 수학 실력이 남다른 박태준이 그의 눈에 띄었고, 이때부터 두 사람의 인연이 이어졌다. 5·16 이틀 후 박정희는 박태준을 불러 "혁명 동지 명단에서 자네를 뺀 이유는 자네를 아끼는 마음 때문이었네. 내가 실패해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면 내 처자를 돌봐달라고 부탁하려 했던 것이야"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그에 앞서 박태준은 이미 대한중석 사장으로 재직하며 만년 적자 회사를 1년 만에 흑자로 전환시킨 경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1968년 4월 1일, 정부 출자 3억 원과 대한중석 출자 1억 원으로 포항종합제철이 설립됐다. 창업 인력 39명과 함께 서울 명동 유네스코 회관 3층에서 창업식을 가졌다.


성장과 위기

최대 위기는 자금 문제였다. 국제컨소시엄 KISA의 지원 계획이 세계은행 한국 담당자의 '경제성 없음' 판단으로 무산됐다. 전환점은 미국에서 자금 조달에 실패하고 귀국하던 길, 하와이에서 박태준이 떠올린 구상이었다. 대일청구권 자금을 제철소 건설에 활용하자는 '하와이 구상'이었다. 수년간의 물밑작업 끝에 일본 정부와 철강업계를 설득해냈다. 건설 현장의 황무지 모래바람 속 사무소는 독일 롬멜 전차군단에 빗대어 '롬멜하우스'라 불렸다. 60평 2층 목조건물에서 직급에 관계없이 책상을 침대 삼아 잠을 청했다. 창업요원 34명 중 용광로를 직접 본 사람은 박태준뿐이었다. 그럼에도 보통 4~5년 걸리는 제철소 건설을 3년 3개월 만에 완료했다. 조업 첫해인 1973년 매출 1억 달러, 순이익 1,2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일본 동종업계가 가동 후 수십 년간 적자를 낸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인 성과였다.


지금 뭐 하는 회사인가

포스코홀딩스는 2022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철강·인프라·이차전지소재라는 3대 축을 구축했다. 리튬·니켈 광산부터 양극재·음극재 공장까지 배터리 소재 전 단계를 그룹 내에서 해결하는 수직계열화 체계다. 2025년 1분기 연결 기준 매출 17조 8,760억 원, 영업이익 7,070억 원을 기록했다. 특히 아르헨티나 리튬 공장이 2025년 3월 최초로 월 단위 흑자를 달성했으며, 2분기 분기 첫 영업이익 달성이 전망된다. 현재 시가총액은 약 33조 원 수준이며, 증권사 목표주가는 42만 원에서 74만 원까지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다.


투자 포인트

포스코홀딩스의 가장 뚜렷한 매력은 배터리 소재 사업의 성장 가능성이다. 전기차 시장 확대와 함께 리튬·니켈 등 핵심 소재 수요가 구조적으로 증가하는 가운데, 광산부터 완제품까지 전 단계를 아우르는 밸류체인을 보유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리튬 사업의 흑자 전환 신호는 중장기 성장 동력으로서의 가시성을 높이는 요소다. 다만 철강 사업의 경기 사이클 민감도, 중국 리스크, 배터리 소재 초기 투자 비용에 따른 단기 수익성 압박은 함께 점검해야 할 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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