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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일기] 9분에 80% 충전 — 파나소닉·CATL이 포기한 전고체를 삼성SDI가 혼자 간다

by 우노디야 2026.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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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SDI라는 이름에는 기묘한 비밀이 숨어 있다. 'SDI'는 원래 'Samsung Display Interface'의 줄임말이었지만, 정작 지금은 디스플레이 사업과 전혀 무관한 회사가 됐다. 회사 측이 "고유명사 SDI"라고 홍보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기업이 얼마나 근본적인 변신을 거쳤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창업 스토리

1970년, 삼성전자공업이 일본전기(NEC)와 합작해 삼성-NEC를 설립했다. 고 이병철 회장이 "브라운관 TV는 국산화해야 한다"는 목표를 내걸고 추진한 강한 의지의 결과물이었다. 당시 국내 전자산업은 중간 부품 조립 수준을 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불모지에서 삼성-NEC는 1970년 10월 3억여 원을 투자해 흑백 브라운관 공장 건설에 착수했고, 같은 해 12월 5일 첫 생산에 성공했다. 착수 후 불과 2개월 만의 성과였다.


성장과 위기

첫 번째 터닝포인트는 1974년 독립이었다. 삼성-NEC는 사명을 '삼성전관공업'으로 변경하고 NEC와 결별해 홀로서기에 나섰다. 1975년 1월 국내 최초 '이코노 브라운관' 개발에 성공했고, 삼성전자가 이 브라운관을 탑재한 이코노 TV로 국내 시장을 석권했다. 1978년 컬러 브라운관 생산을 시작했고, 1986년 컬러 브라운관 1,000만 본 생산 돌파, 1992년 매출 1조 원 달성이라는 성장 궤도를 그렸다. 세 번째 전환점은 2000년 배터리 사업 진출이었다. 2차전지를 주력으로 삼아 소형 IT용 2차전지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달성했다. 네 번째 위기는 2016년 갤럭시 노트7 배터리 폭발 사태였다. 처음에는 삼성SDI 배터리가 원인으로 지목됐지만, 교체분에 사용된 일본 TDK 계열 중국 ATL 배터리도 폭발하면서 배터리 구조적 한계 문제로 결론이 바뀌었다. 2019년 전국 ESS 화재 사고까지 겹쳤지만, 이후 안전 대책을 마련하며 중대형 배터리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전환했다. 2014년에는 제일모직을 흡수합병해 케미칼 사업에 진출했다가, 2016년 다시 분사해 롯데그룹에 매각하는 복잡한 여정도 거쳤다.


지금 뭐 하는 회사인가

현재 삼성SDI는 에너지솔루션 사업이 매출의 95%를 차지하는 배터리 전문 기업이다. 약 1,930억 달러 규모의 EV 배터리 시장에서 전 세계 점유율 3.3%를 기록하고 있다. 최근 실적은 녹록지 않다. 2025년 4분기 매출 3조 8,587억 원에 영업손실 2,992억 원을 기록했고, 연간으로는 매출 13조 2,667억 원에 영업손실 1조 7,224억 원이었다. 주가도 1년 만에 48만 원에서 22만 원으로 절반 수준까지 하락했다. 그러나 희망 신호도 있다. 2025년 1분기 영업손실을 전년 동기 대비 64% 줄였고, 순이익은 561억 원 흑자로 전환됐다. 북미 전력용 ESS 수요 급증으로 2028년 공급 물량까지 전량 수주를 완료한 상황이다.


투자 포인트

삼성SDI의 가장 눈에 띄는 수치는 연구개발 투자 규모다. 2023년 1분기 기준 R&D 비용이 LG에너지솔루션보다 많다. 배터리 업계 6위 점유율 기업이 1위보다 많은 R&D를 집행하고 있다는 구조는 이례적이다. 전고체 배터리에서도 독자 노선을 걷고 있다. 파나소닉과 CATL이 개발 속도를 줄이는 상황에서 삼성SDI는 2027년 양산 계획을 고수하고 있다. 9분 만에 80% 충전, 2,000회 이상 충전 사이클이라는 성능 지표는 업계 기준을 크게 웃돈다. 브라운관에서 출발해 55년간 끊임없이 변신해온 기업의 DNA가 전고체 배터리 영역에서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가 중장기 투자 판단의 핵심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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