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한지주 하면 1982년 은행 창업 스토리가 먼저 떠오르지만, 창업주 이희건 명예회장의 출발점은 전혀 달랐다. 1945년 광복 후 오사카 쓰루하시역 앞 무허가 시장에서 자전거 타이어를 팔던 청년이었다. 그 청년이 30세에 상점가동맹 초대회장이 됐고, 재일교포 341명이 모은 250억 원으로 신한은행을 창업해 109년 역사의 조흥은행을 인수하기까지의 여정은 한국 금융사의 압축된 드라마다.
창업 스토리
1917년 경북 경산에서 태어난 이희건 회장은 1932년 15세의 나이로 일본 오사카로 건너갔다. 광복 후에는 쓰루하시역 앞 무허가 시장에서 자전거 타이어를 팔며 생계를 이었다. 1946년 일본 경찰이 이 시장을 폐쇄했다. 재일 한국인들의 경제 기반을 차단하려는 조치였다. 이희건은 재일 한국인을 대표해 각계에 시장 재개를 호소했고, 1947년 시장이 다시 문을 열었다. 30세에 상점가동맹 초대회장에 오른 것은 그 결과였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1955년 재일교포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신용조합 '오사카흥은'을 설립했다. 1982년 7월, 재일동포 341명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250억 원으로 신한은행이 탄생했다. 개업 첫날 고객 1만 7,520명이 방문해 357억 원의 예금을 맡겼다.
성장과 위기
신한의 첫 번째 전환점은 1998년 외환위기였다. 다른 은행들이 연달아 무너지는 가운데 신한은 경영 부실로 퇴출된 동화은행을 흡수하며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 진짜 반전은 2003년 조흥은행 인수였다. 창립 24년차 신한이 109년 역사의 조흥은행을 인수한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이 의아해했다. 조흥은행은 일제강점기 민족계 은행들을 통합해 만들어진, 코스피 상장번호 1번을 단 상징적인 존재였기 때문이다. 합병 과정도 흥미롭다. 존속 법인은 조흥은행으로 지정됐고 신한은행 법인은 소멸됐다. 그러나 신한이 조흥을 인수한 구조였다. 결과적으로 현재 신한은행의 법적 설립연도는 1897년이 됐다. 가장 큰 위기는 2010년 '신한사태'였다. 최고 경영진 사이의 내분이 불거지자, 재일교포 그룹인 간친회가 이들을 일본 나고야로 불러 직접 질책했다. 한국 금융계 최고 경영진이 일본으로 '소환'당한 유례없는 사건이었다.
지금 뭐 하는 회사인가
신한지주는 2025년 1월 기준 시가총액 46조 원대의 4대 금융지주 중 하나다. 2025년 3분기 누적 연결 순이익은 4조 4,6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10.3% 증가했다. 비은행 부문 비중이 30%를 넘어서며 수익 구조도 다각화됐다. 20개국 163개 글로벌 네트워크를 운영하며 은행·투자·외환 등 다양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한다. 2021년에는 배달 앱 '땡겨요'를 출시하며 플랫폼 사업에도 도전했다.
투자 포인트
신한지주의 가장 독특한 특성은 지배구조다. 명목상 최대주주는 국민연금이지만, 재일교포 그룹 간친회 회원 5,000여 명이 17%를 보유하며 실질적 최대주주 역할을 한다. 이들의 단결된 목소리는 경영진 견제 기능으로 작동한다. 중장기적으로는 비은행 부문 성장과 해외 사업 확장이 핵심 변수다. 전통적인 은행업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며, 금리 변동과 부동산 시장 동향에 따른 대출 건전성은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할 요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