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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일기] 용기 뚜껑이 깨져서 전 재산 걸었다 — 동동구리무에서 세계 15위 LG화학까지

by 우노디야 2026.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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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화학 하면 배터리나 석유화학이 먼저 떠오르지만, 이 회사의 시작은 1947년 부산 서대신동 자택에서 여성용 크림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름은 '동동구리무'. 행상들이 북을 두 번 치고 다녔기 때문에 '동동', 크림의 일본식 발음 '구리무'가 합쳐진 이름이었다. 미국 여배우를 모델로 내세운 마케팅 덕분에 중국 상하이에서 들어온 외제품이라는 소문까지 돌았다. 그러나 진짜 반전은 크림 용기 뚜껑이 자꾸 깨져서 항의가 빗발치면서 시작됐다. 창업자 구인회는 전 재산을 걸고 미국에서 사출성형기를 들여왔고, 1952년 국내 최초의 플라스틱 빗을 만들어냈다.


창업 스토리

연암 구인회는 원래 진주에서 포목상을 운영하던 사업가였다. 1931년 구인회상점으로 시작해 1940년에는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무역업으로 사업을 키웠다. 해방 후 모든 사업을 정리하고 부산으로 이전해 미 군정청 허가 무역업 제1호 업체를 세웠다. 1947년 1월 5일, 락희화학공업사를 설립하며 '럭키크림'을 출시했다. 국민 생활에 꼭 필요한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신념에서 비롯된 결정이었다. 크림에서 시작해 빗·세수대야·식기로 사업을 확장했고, 1954년에는 국내 최초 치약인 '럭키치약'을 개발했다. 미군 치약의 3분의 1 가격으로 판매해 대박을 기록했으며, 당시 국민들에게 치약과 럭키치약은 동의어처럼 통했다.


성장과 위기

 

가장 큰 전환점은 1969년 창업주 구인회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찾아왔다. 아들 구자경이 25세의 나이로 회장직을 승계했다. 구자경 회장은 25년간 재임하며 매출을 260억 원에서 30조 원대로, 직원 수를 2만 명에서 10만 명으로 늘렸다. 가장 도전적인 결단은 석유화학 사업 진출이었다. 당시 민간 기업이 국가 기간산업인 석유화학에 뛰어든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시도였다. 1977년 여천공장 PVC 공장을 시작으로, 1991년 국내 최대 나프타 생산공장을 완공하며 종합석유화학 회사로 거듭났다. IMF 위기 때도 남들이 움츠러들 때 중국에 현지 공장을 설립하는 공격적 경영을 펼쳤다.


지금 뭐 하는 회사인가

현재 LG화학은 매출액 기준 국내 1위 화학기업이자 세계 15위 화학회사다. 2024년 연결 기준 매출 48조 9,161억 원을 기록했다. 석유화학·정보전자소재·의약품 등 다양한 사업 영역을 운영하고 있다. 2020년 LG에너지솔루션이 분사됐지만 여전히 LG화학의 핵심 자회사로 전기차 배터리 시장을 이끌고 있다. 최근에는 국내 최초로 전구체 프리 양극재 양산에 성공하며 배터리 기술 경쟁력을 높였다.


투자 포인트

LG화학의 가장 뚜렷한 강점은 시대가 바뀔 때마다 한 발 앞서 변화를 읽어온 이력이다. 크림에서 플라스틱으로, 플라스틱에서 석유화학으로, 다시 배터리와 바이오까지 이어진 변신의 궤적이 이 기업의 DNA다. 전기차 시대 핵심인 배터리 사업에서 글로벌 톱 3 안에 진입한 것도 주목할 성과다. 다만 중국 업체들의 추격이 거세지고 있으며, 원재료 가격 변동성은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할 변수다. 장기적으로는 기술 혁신 속도가 경쟁력의 핵심 분기점이 될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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