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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일기] 거북선 그림으로 4,300만 달러 빌렸다 — 조선소도 없이 배 먼저 만든 회사

by 우노디야 2026.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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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런던, 한 한국인이 영국 바클레이스 은행 관련자 앞에서 500원짜리 지폐를 꺼내들었다. 지폐에는 거북선이 그려져 있었다. "한국은 이미 16세기에 철갑선을 만들었습니다." 이 한 마디로 4,300만 달러 차관을 따낸 인물이 정주영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조선소도 없이 배를 먼저 만들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1972년 울산 미포 황무지에서 조선소 건설과 첫 선박 건조를 동시에 시작해 1974년 조선소 준공식과 선박 인도식을 같은 날 치렀다.


창업 스토리

정주영은 1915년 강원도 통천군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19세에 경성으로 상경해 막노동부터 시작했다. 쌀가게 배달원으로 일하다 특유의 성실함으로 6개월 만에 장부 정리까지 맡게 됐다. 1938년 주인으로부터 가게를 인수해 '경일상회'를 세웠고, 광복 후에는 귀속재산 불하로 받은 땅에 '현대자동차공업사'를 차려 정비업을 시작했다. "현대적이고 발전된 미래"를 뜻하는 '현대'라는 이름이 여기서 출발했다. 1970년 조선사업부를 정식 발족하며 조선업 진출을 선언했다. 위험 부담은 크지만 후방산업 파급효과가 크고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성장과 위기

창업 자금 6,300만 달러 중 4,300만 달러를 외자로 조달해야 했지만 미국과 일본은 모두 거절했다. 정주영은 유럽으로 눈을 돌렸다. 1971년 런던에서 바클레이스 은행에 큰 영향력을 가진 롱보텀 영국 하원의원을 만났고, 500원 지폐의 거북선으로 설득해 차관을 확보했다. 1972년 울산 미포 황무지에서 시작해 1974년 2월 조선소 준공식과 첫 선박 '애틀랜틱 베런호' 인도식을 같은 날 열었다. 세계 조선업계가 불가능한 일이라 했지만 정주영은 해냈다. 1983년에는 창업 10년 만에 세계 1위 조선소에 올랐다. 1979년 첫 국산 선박용 엔진 개발, 1994년 한국 최초 LNG선 건조 등 기술 혁신도 이어졌다. 2000년대 조선업 침체기에도 체질 개선과 기술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지금 뭐 하는 회사인가

HD현대중공업은 현재 매출 17조 5,000억 원, 수주잔고 56조 원을 기록하며 3년치 일감을 확보한 상태다. 조선·엔진·해양플랜트·방산까지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 함정 사업도 급성장해 올해 수주 목표를 30억 달러로 잡았다. 5,000척의 선박 인도 기록을 세웠고, 108척의 함정을 건조해 20척을 해외에 수출했다. 그룹 전체 시가총액은 202조 원을 돌파하며 국내 5위 그룹에 올랐다. 2030년 완성 목표인 미래 조선소 'FOS'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해 생산성 30% 향상·건조기간 30% 단축을 목표로 하며, 팔란티어 소프트웨어 도입 이후 이미 건조 속도가 30% 향상됐다.


투자 포인트

HD현대중공업의 가장 뚜렷한 강점은 조선업계 유일의 완전한 수직계열화다. 선박 건조부터 엔진·해양플랜트·방산까지 자체 생산 체계를 갖췄으며, 중형 엔진은 라이선스가 아닌 자체 모델 '힘센엔진'으로 기술 종속에서 벗어났다. 56조 원의 수주잔고는 3년간 안정적 매출을 보장하는 구조다. 인도의 100조 원 규모 해군 현대화 사업 등 해외 방산 시장 진출 가능성도 주목할 지점이다. 다만 조선업 특성상 경기 사이클과 환율 변동성은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할 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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