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산에너빌리티를 원자력 발전소 핵심 부품을 만드는 첨단 기업으로만 알고 있다면 절반의 이야기다. 이 회사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1896년 종로 4가의 작은 포목점 '박승직상점'에 닿는다. 128년이라는 세월 동안 포목상에서 원전 기업으로 변신한 것이다. 창업자 박승직은 보부상 출신이었다. 경기도 광주에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 17세부터 전국을 누비며 장사를 익혔고, 10여 년의 행상 생활 끝에 서울에 정착해 포목점을 열었다. 회사 이름 '두산(斗山)'은 창업자 아들 박두병의 이름 첫 글자 '두(斗)'에 '산(山)'을 붙인 것으로, 한 말 한 말 차근히 쌓아 산같이 커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창업 스토리
박승직은 단순한 포목상이 아니었다. 주식회사 전환과 무역업 확장을 통해 한국 근대 상업의 기틀을 마련했고, 조선상업은행 설립과 광장주식회사 창립 발기인으로 민족 경제 발전에 기여했다. 아들 박두병은 1940년대에 이미 출근부·상여금 제도를 도입했고, 여직원을 확충하고 사내 야구부·탁구부와 전 직원 야유회까지 운영했다. 당시 기준으로는 상당히 선진적인 경영 방식이었다. 가장 극적인 순간은 해방 직후였다. 1945년 박승직상점이 폐쇄된 후, 박두병은 1946년 두산상회를 새로 설립했다. 홍콩으로 게살 통조림을 수출해 4,500달러를 벌어들인 것이 훗날 거대 기업집단의 종잣돈이 됐다.
성장과 위기
두산그룹의 시련은 2000년대부터 시작됐다. 2008년 밥캣 인수를 위한 과다 차입금 상황에서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지며 건설 경기가 무너졌다. 두산건설의 일산 위브 더제니스 미분양과 울산 대현 주택사업이 그룹 자금 1조 7,000억 원을 소진하는 구조가 됐다. 두산중공업이 두산건설에 투입한 지원금만 1조 9,252억 원에 달했다. 박용만 회장이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박정원 체제로 전환되면서 반전이 이루어졌다. 두산건설을 사모펀드에 매각하고 두산인프라코어도 정리하며 위기를 돌파했다.
지금 뭐 하는 회사인가
현재 두산에너빌리티는 한국 내 유일의 원자력 발전소 기자재 전문 제작 업체다. 원자로·증기발생기 등 원전 핵심 기기부터 터빈·발전기·핵연료 운반 용기까지 원자로 관련 기기의 대부분을 생산한다. 원전 주기기용 주단 소재 공급 능력은 전 세계에서 두산에너빌리티와 일본 JSW·프랑스 CFI 등 단 3개 업체만 보유하고 있다. 2025년 연간 수주액은 14조 7,280억 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체코 두코바니 원전 프로젝트와 미국 빅테크 가스터빈 공급 계약이 주요 성과였다. SMR(소형모듈원전) 시장에서도 2026년부터 경남 창원에 SMR 전용 공장을 구축해 연간 20기 수준의 제작 능력을 갖출 계획이다. 주가는 2025년 4월 2만 원에서 2026년 2월 10만 원 근처까지 5배 가까이 상승했다.
투자 포인트
두산에너빌리티는 글로벌 원전 르네상스의 핵심 수혜 기업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전 세계 3개 업체만 보유한 핵심 기술력과 미국·유럽 시장에서의 신뢰도가 경쟁력의 근간이다. SMR과 가스터빈 사업까지 더해져 에너지 전환 시대의 핵심 공급자로 자리잡고 있다. 다만 원전 프로젝트 특성상 장기 수주·납품 구조이므로 단기 변동성은 감안해야 할 요소다. 128년 역사 동안 수차례 위기를 극복해온 이력과 현재의 독보적 기술력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접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