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일기] 고유가·고금리·AI 삼각파도 — 트럼프-이란 협상이 오늘 시장을 바꿨다

숫자보다 먼저 느낀 건 공기였다
뭔가 이상한 날이 있다. 사무 안이 조용하고, 점심 때 동료들이 별말 없이 밥만 먹고, 오후에 회의 중에도 다들 어딘가 딴 데 있는 것 같은 날. 오늘이 딱 그랬다.
나중에 확인하니 원인은 생각보다 복합적이었다. 미국채 10년물이 4.4%를 넘었고, 신임 한은총재가 매파 성향이라는 뉴스가 돌면서 "한국도 금리 올릴 수 있다"는 해석이 퍼졌다. 여기에 중동 정세까지 뒤엉켰다.
트럼프가 며칠 전에 "호르무즈 해협 안 열면 이란 발전소 초토화"라고 했었는데, 오늘은 또 "생산적인 대화를 나눴다, 5일간 공격 유예"라고 했다. 브렌트 원유가 114달러에서 97달러로 뚝 떨어졌다가, 이후 102달러로 다시 올라왔다.
숫자만 보면 롤러코스터인데, 이게 무서운 게 아니라 뭔가 이상하게 익숙하다.
나는 이 국면이 어디서 왔는지 알 것 같다
솔직히, 오늘 하락이 어떤 종목이 나빠서가 아니라는 게 느껴졌다. 내가 가진 종목들이 특별히 악재가 있는 것도 아닌데 다 같이 빠졌다. 이럴 땐 보통 두 가지 중 하나다. 패닉이거나, 포지션 정리거나.
이번엔 둘 다였던 것 같다.
고금리가 지속된다는 신호가 오자 신흥국 자금이 빠져나가는 전형적인 패턴. 유가 급등이 인플레이션 우려를 자극하고, 그게 다시 금리 상방 압력으로 이어지는 고리. 여기에 지정학 리스크까지 얹히면 시장은 일단 팔고 보는 경향이 있다.
인테리어 일할 때도 이런 느낌이 있다. 현장이 뭔가 꼬이기 시작하면 작은 문제 하나가 아니라 여러 군데서 동시에 터진다. 그게 진짜 문제가 아니라 전부 같은 뿌리에서 나온 거라는 걸, 시간이 좀 지나야 보인다.
지금 시장이 딱 그 느낌이다. 전쟁도 금리도 유가도, 전부 같은 방향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다.
그래서 오늘 나는 아무것도 안 했다
매도 버튼에 손이 가긴 했다. 솔직히.
근데 생각해보면, 이런 날 팔고 나서 좋은 기억이 별로 없다. 무서워서 판 날치고 타이밍이 맞은 적이 없었다. 내가 팔고 나면 반등하더라는, 너무 개인적이고 너무 반복적인 그 경험.
지금 내 포트폴리오에서 AI 쪽 비중이 있는데, 여기서 팔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근데 이 기업들이 갑자기 사업을 못 하게 된 것도 아니고, 실적이 꺾인 것도 아니다. 그냥 시장 전체가 흔들리면서 같이 빠진 것뿐이다.
에너지 안보 쪽은 오히려 눈이 간다. 이번 사태처럼 호르무즈가 흔들릴 때마다 원전이나 가스발전 얘기가 나온다. 단기 트레이딩으로 보는 게 아니라, 구조적으로 이 방향은 계속 맞는 방향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PBR 가치주도 마찬가지. 고금리 환경이 길어질수록 성장주보다 실물자산, 저평가 주식들이 버티는 힘이 다르다는 게 점점 체감된다.
아이가 잠들고 나서 드는 생각
딸 재우고 방에서 나오면 거실이 조용하다. 이 조용한 시간에 오늘 하루를 정리하는 게 나한테는 투자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왜 이 돈을 굴리고 있는가.
월급만 갖고는 불안하다. 아이가 클수록 돈이 더 든다. 지금 이 일 평생 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시작했고, 그래서 계속하고 있다.
-6.49%가 무서운 건 맞다. 근데 더 무서운 건 이 불안한 감정에 지배당해서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오늘은 그냥 버텼다. 그게 오늘의 전략이었다.
"인내심 없이 투자하는 건, 씨도 안 뿌리고 열매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 피터 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