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5 [투자일기] 소 판 돈으로 제철소 공사판에 간 청년 — 정주영 4번의 가출이 현대제철을 만들었다 현대제철의 가장 놀라운 비화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정몽필의 전임으로 적자덩어리 인천제철을 담당했다는 사실이다. 1982년 정주영의 장남 정몽필이 인천제철의 적자 누적을 막는 임무를 맡았지만 경부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로 급작스레 사망하는 비극이 일어났다. 정주영이 무려 4번이나 가출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첫 가출이 바로 청진의 제철 공장 건설 공사장 노동자를 모집한다는 기사를 보고 소를 판 돈으로 원산 고원의 철도 공사판에서 흙을 날랐던 것이다. 정주영의 첫 사회경험이 제철소 건설 현장이었다는 운명적 인연이다.창업 스토리현대제철은 6.25전쟁이 채 끝나지 않은 1953년 6월 10일 대한중공업공사로 출발했다. 전후 시설 복구에 필요한 철강재를 생산하기 위한 국가적 프로젝트였다. 대한민국 최초 철강회사였다... 2026. 6. 13. [투자일기] 거북선 그림 500원으로 4,300만 달러를 빌렸다 — 현대건설 78년 종목 공부 현대건설의 진짜 출발점은 자동차 정비소였다. 정주영이 일제강점기에 인수한 '아도 서비스'라는 자동차 정비회사가 현대그룹 전체의 뿌리다. 가장 유명한 비화는 500원 지폐 속 거북선 일화다. 1971년 영국에서 조선소 건설 차관을 받기 위해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 지폐를 꺼내며 "한국은 영국보다 300년 앞서 철갑선을 만든 민족"이라고 설득해 4,300만 달러 차관을 따낸 것이다.창업 스토리1947년 5월, 정주영이 현대토건사를 설립했다. 자동차 수리대금을 받으러 미군 부대를 자주 출입하면서 토건업이 유망할 것임을 간파했다. "나는 무슨 일을 시작하든 된다는 확신 90%와 반드시 되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 10% 외에 안 될 수도 있다는 불안은 단 1%도 갖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밀어붙였다. 공업학교 교.. 2026. 6. 8. [투자일기] 아무도 원하지 않는 유조선 3척이 시작이었다 — 오일쇼크 위기가 HMM을 만들었다 1976년 제1차 오일쇼크로 유조선 운송량이 급감했을 때, 현대중공업이 건조한 초대형 유조선 3척을 발주처가 인수하길 거부했다. 정주영 회장이 내린 결단은 남겨진 3척으로 새로운 해운회사를 만드는 것이었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 배 3척이 오늘날 시총 18조 원 HMM의 시작이었다. 1998년 HMM이 분단 이후 처음으로 금강산 관광선 운행을 시작한 주역이기도 했다.창업 스토리1976년 3월, 현대중공업이 출자해 아세아상선으로 설립된 회사가 HMM의 전신이다. 오일쇼크로 유가가 폭등하며 발주처들이 완성된 선박 인수를 거부하자 정주영 회장은 이 위기를 기회로 전환했다. 남겨진 초대형 유조선 3척으로 해운회사를 창업한 것이다. 1983년 현대상선으로 사명을 변경하고 신한해운을 비롯한 여러 해운사를 인수·합병하.. 2026. 5. 26. [투자일기] 거북선 그림으로 4,300만 달러 빌렸다 — 조선소도 없이 배 먼저 만든 회사 1971년 런던, 한 한국인이 영국 바클레이스 은행 관련자 앞에서 500원짜리 지폐를 꺼내들었다. 지폐에는 거북선이 그려져 있었다. "한국은 이미 16세기에 철갑선을 만들었습니다." 이 한 마디로 4,300만 달러 차관을 따낸 인물이 정주영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조선소도 없이 배를 먼저 만들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1972년 울산 미포 황무지에서 조선소 건설과 첫 선박 건조를 동시에 시작해 1974년 조선소 준공식과 선박 인도식을 같은 날 치렀다.창업 스토리정주영은 1915년 강원도 통천군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19세에 경성으로 상경해 막노동부터 시작했다. 쌀가게 배달원으로 일하다 특유의 성실함으로 6개월 만에 장부 정리까지 맡게 됐다. 1938년 주인으로부터 가게를 인수해 '경일상회'를 .. 2026. 5. 16. [투자일기] 거북선 그림으로 조선소 자금을 빌렸다 — 정주영과 현대차의 진짜 이야기 현대자동차 하면 아이오닉이나 투싼 같은 최신 모델이 먼저 떠오르지만, 이 회사의 진짜 매력은 창업주 정주영의 비상식적인 에피소드들이다. 영국 은행가에게 500원짜리 지폐의 거북선 그림을 꺼내 들며 "우리는 영국보다 300년 앞서 철갑선을 만들었소"라고 설득해 조선소 건설 자금을 확보했다는 일화는 그 자체로 한국 경영사의 한 장면이다. 언론이 "정주영은 하루 4시간만 잔다"고 보도하자, 본인이 직접 "나는 기운이 매우 센 사람인데도 8시간 안 자면 일을 못한다. 앞으로 잠 적게 자고 일한다는 사람이 있으면 병자 아니면 사기꾼"이라고 반박했다는 일화도 마찬가지다.창업 스토리정주영은 1915년 강원도 통천군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진학이 여의치 않아 19세에 경성으로 올라온 그는 복흥상회라는 쌀가.. 2026. 5. 4.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