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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주식17

[투자일기] 숙주나물 팔던 미국 갑부가 한국으로 돌아온 이유 유한양행 하면 뭐가 떠오르냐고 물으면 대부분 이렇게 답한다. '안티푸라민', '청렴한 기업', '전 재산 사회 환원'.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 회사를 세운 사람이 원래 미국에서 숙주나물 통조림 팔던 식품 벤처 사업가였다는 건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유일한 박사는 GE에 다니다 때려치우고 창업을 했는데, 아이템이 다름 아닌 숙주나물 통조림이었다. 당시 미국에는 중국 요리점이 넘쳐났는데 만두에 들어갈 숙주나물을 신선하게 유통할 방법이 없었다. 유일한은 여기서 기회를 봤다. 열처리 보존법을 개발하고 1922년 '라초이(La Choy)'라는 식품회사를 세웠다. 6년 만에 직원 400명, 연 매출 200만 달러짜리 회사로 키웠다. 지금 돈으로 치면 250억 원 규모다. 27살 청년이.그런데 이 잘나가던 미국 사.. 2026. 7. 28.
[투자일기] 현대해상은 원래 현대그룹 회사가 아니었다 현대해상. 이름만 들으면 정주영 회장이 뚝딱 만들어낸 현대그룹 계열사처럼 들린다. 그런데 아니다. 이 회사는 정주영과 아무 관계없이 탄생했고, 오히려 다른 회사가 망한 덕분에 현대 품에 안긴 케이스다. 그것도 주인이 세 번 바뀐 뒤에.2025년 연결 기준 순이익이 1조 198억 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는데 주주에게 돌아간 배당은 0원이었다. 실적은 역대 최고인데 배당은 없다는 역설적인 스토리까지 가지고 있다. 손해보험사 맞나 싶은 이 회사의 70년 이야기를 풀어본다.[창업 스토리]현대해상의 첫 이름은 동방해상보험주식회사다. 1955년 3월 5일에 세워졌다. 한국전쟁 휴전협정이 1953년 7월이니, 전쟁이 끝난 지 채 2년도 안 된 시점이다. 서울 어딘가는 아직 폐허였고, 자동차는 길에서 구경하기도 어려.. 2026. 7. 27.
[투자일기] 공기업으로 시작해 그룹 폭풍을 버티고 미국 보험사를 2조 3천억에 샀다 — DB손해보험 히스토리 DB손해보험 하면 뭐가 떠오르나. 자동차보험? 광고? 아니면 그냥 '동부화재 이름 바뀐 곳'? 이 회사의 뿌리를 파고들면 꽤 놀라운 이야기가 나온다. 이 회사, 원래 재벌이 창업한 게 아니다. 국가가 만든 자동차보험 독점기구에서 시작했다.1962년 국내 손해보험사들이 공동으로 출자해 세운 '한국자동차보험공영사'가 그 출발이다. 말 그대로 공영(公營). 특정 오너가 없는, 정책적으로 설계된 회사였다. 이 회사가 대한민국 자동차보험 시장을 오랫동안 독점했다. 지금의 DB손해보험이 자동차보험 쪽에서 유독 역사가 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1997년엔 자동차종합보험 최초 판매 기록이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더 놀라운 건 그다음이다. 계열사가 50개 넘던 동부그룹이 구조조정으로 절반 넘게 팔려나가는 폭풍 속에서.. 2026. 7. 26.
[투자일기] 삼성증권은 사실 골프장 때문에 삼성이 됐다 112조 원. 대한민국 국가 예산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그런데 이 돈이 하루아침에 허공에서 뚝 떨어졌다. 2018년 4월, 삼성증권 직원 한 명의 손가락 실수 하나로. 더 황당한 건 그 다음에 벌어진 일이다. 잘못 들어온 주식인 줄 알면서도 팔아치운 직원이 16명이나 됐다. 그 회사가 7년 뒤 사상 처음으로 연간 순이익 1조 원을 돌파했다.그리고 지금 이 회사는 '투자 가능 자산 1,000억 원 이상'이라는 가입 기준을 내걸고, 170가문의 56조 원을 조용히 굴리고 있다. 일반인은 문도 두드릴 수 없는 세계의 이야기다.[창업 스토리]삼성증권의 출발점은 '삼성'이 아니었다. 1982년, 한국비철분말 회장 배현규라는 인물이 비철금속 사업을 하다가 느닷없이 금융업에 뛰어들었다. 이름은 한일투자금.. 2026. 7. 24.
[투자일기] 청과물 도소매에서 시총 1,000조까지 — 삼성전자가 걸어온 길 삼성전자 하면 반도체 대기업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청과물·건어물 도소매로 시작했다. 더 놀라운 건 창업자 이병철이 20대 후반에 이미 200만 평 대지주였다가 전재산을 날렸다는 사실이다. 부농 아들로 태어나 와세다대학까지 다니던 그가 어떻게 한량 생활을 하다가 결국 재계 최상위권 대기업을 만들어냈을까?창업 스토리 이병철은 1910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났다. 와세다대학에서 공부하다 각기병으로 중도 포기한 후, 조선식산은행에서 담보 대출을 받아 무모한 차입 경영에 나섰다. 놀랍게도 20대 후반에 200만 평의 대지주가 되었다. 하지만 1937년 중일전쟁이 터지면서 모든 게 무너졌다. 토지 담보 대출이 중단되자 시가보다 낮은 가격에 땅을 팔아넘겨야 했고, 협동정미소와 운송회사까지 처분해 겨우 빚을 청산했다.. 2026. 4.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