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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일기16

[투자일기] 1883년 개화파 수출기업이 시작 — 칼 아이칸도 이기고, 에쎄로 세계 5위가 된 KT&G KT&G 하면 에쎄나 담배회사 정도로 인식되기 쉽지만, 이 회사의 뿌리는 1883년 개화파가 세운 조선 최초의 근대적 수출기업 '순화국'에 닿는다. 2006년에는 세계적인 기업사냥꾼 칼 아이칸의 적대적 인수 공격을 받기도 했다. 아이칸은 지분 6.6%로 시작해 자회사 인삼공사 매각과 부동산 처분을 압박했고, 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까지 확보했다. 외국인 주주가 경영진과 적대적 관계인 채로 이사회에 진출한 국내 최초의 사례였다. KT&G는 자사주 소각 포함 2조 8,000억 원을 주주에게 돌려주겠다며 방어했고, 아이칸은 1년 만에 1,500억 원 이상의 수익을 챙기고 철수했다.창업 스토리KT&G의 진짜 창업 스토리는 2017년에야 밝혀졌다. 일본 국회도서관에서 발견된 〈통상휘편〉이라는 문서가 계기였다. '순화.. 2026. 5. 19.
[투자일기] 1896년 종로 포목점이 128년 뒤 전 세계 3개뿐인 원전 기술 회사가 됐다 두산에너빌리티를 원자력 발전소 핵심 부품을 만드는 첨단 기업으로만 알고 있다면 절반의 이야기다. 이 회사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1896년 종로 4가의 작은 포목점 '박승직상점'에 닿는다. 128년이라는 세월 동안 포목상에서 원전 기업으로 변신한 것이다. 창업자 박승직은 보부상 출신이었다. 경기도 광주에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 17세부터 전국을 누비며 장사를 익혔고, 10여 년의 행상 생활 끝에 서울에 정착해 포목점을 열었다. 회사 이름 '두산(斗山)'은 창업자 아들 박두병의 이름 첫 글자 '두(斗)'에 '산(山)'을 붙인 것으로, 한 말 한 말 차근히 쌓아 산같이 커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창업 스토리박승직은 단순한 포목상이 아니었다. 주식회사 전환과 무역업 확장을 통해 한국 근대 상업의 기틀을 마.. 2026. 5. 18.
[투자일기] 영업이익 400배, 시총 26배 — 삼성 미사일 부품 공장이 K방산 절대강자가 된 이야기 1977년 삼성그룹에서 미사일 추진기관을 만들던 작은 방산회사가 있었다. 그 회사가 48년 만에 시가총액 50조 원을 넘나드는 K-방산의 절대강자가 됐다. 2014년 337억 원이던 영업이익이 2025년 예상치 3조 3,767억 원까지 불어났다. 약 400배의 폭증이다.창업 스토리이병철 삼성 초대회장이 1977년 '삼성정밀공업'을 설립한 배경은 자주국방에 대한 절박함이었다. 1960~70년대 베트남 전쟁 파병으로 생긴 병력 공백을 노린 북한의 무장공비 남파, 주한미군 철수 검토까지 이어지는 안보 위기 속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1970년 국방과학연구소를 세우며 자주국방에 사활을 걸었고, 이병철이 그 흐름에 맞춰 방산업 진출을 결심했다. 흥미롭게도 이 회사는 처음부터 다양한 사업을 동시에 벌였다. 1979년 .. 2026. 5. 17.
[투자일기] 거북선 그림으로 4,300만 달러 빌렸다 — 조선소도 없이 배 먼저 만든 회사 1971년 런던, 한 한국인이 영국 바클레이스 은행 관련자 앞에서 500원짜리 지폐를 꺼내들었다. 지폐에는 거북선이 그려져 있었다. "한국은 이미 16세기에 철갑선을 만들었습니다." 이 한 마디로 4,300만 달러 차관을 따낸 인물이 정주영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조선소도 없이 배를 먼저 만들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1972년 울산 미포 황무지에서 조선소 건설과 첫 선박 건조를 동시에 시작해 1974년 조선소 준공식과 선박 인도식을 같은 날 치렀다.창업 스토리정주영은 1915년 강원도 통천군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19세에 경성으로 상경해 막노동부터 시작했다. 쌀가게 배달원으로 일하다 특유의 성실함으로 6개월 만에 장부 정리까지 맡게 됐다. 1938년 주인으로부터 가게를 인수해 '경일상회'를 .. 2026. 5. 16.
[투자일기] 오사카 자전거 타이어 장사 → 재일교포 341명 250억 → 109년 조흥은행 인수 신한지주 하면 1982년 은행 창업 스토리가 먼저 떠오르지만, 창업주 이희건 명예회장의 출발점은 전혀 달랐다. 1945년 광복 후 오사카 쓰루하시역 앞 무허가 시장에서 자전거 타이어를 팔던 청년이었다. 그 청년이 30세에 상점가동맹 초대회장이 됐고, 재일교포 341명이 모은 250억 원으로 신한은행을 창업해 109년 역사의 조흥은행을 인수하기까지의 여정은 한국 금융사의 압축된 드라마다.창업 스토리1917년 경북 경산에서 태어난 이희건 회장은 1932년 15세의 나이로 일본 오사카로 건너갔다. 광복 후에는 쓰루하시역 앞 무허가 시장에서 자전거 타이어를 팔며 생계를 이었다. 1946년 일본 경찰이 이 시장을 폐쇄했다. 재일 한국인들의 경제 기반을 차단하려는 조치였다. 이희건은 재일 한국인을 대표해 각계에 시.. 2026. 5. 14.
[투자일기] 행정고시 차석 합격 후 임용 취소 — 그래서 KB금융 5조 순이익 신화가 생겼다 KB금융 윤종규 전 회장은 행정고시 필기시험에서 차석으로 합격했다. 그러나 대학 시절 시위 참여 경력을 이유로 임용이 취소됐다. 진실화해위원회는 2008년 이 사건을 '잘못된 처리'로 결론 내렸다. 그가 공직에 입문했다면 KB금융의 5조 원 순이익 신화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창업 스토리KB금융의 뿌리는 두 개의 국책은행이다. 1963년 설립된 국민은행은 서민금융 전담 기관이었고, 1967년 설립된 주택은행은 주택 공급을 목적으로 한 특수목적 은행이었다. 실질적 전환점은 1995년 민영화였다. 정부 소유에서 민간으로 이전되며 현재 KB금융의 출발점이 형성됐다.성장과 위기KB금융의 운명을 바꾼 것은 1997년 외환위기였다. 국가적 재난이 오히려 성장의 계기가 됐다. 1998년 주택은행은 동남은행을, .. 2026. 5.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