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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목공부19

[투자일기] 오사카 자전거 타이어 장사 → 재일교포 341명 250억 → 109년 조흥은행 인수 신한지주 하면 1982년 은행 창업 스토리가 먼저 떠오르지만, 창업주 이희건 명예회장의 출발점은 전혀 달랐다. 1945년 광복 후 오사카 쓰루하시역 앞 무허가 시장에서 자전거 타이어를 팔던 청년이었다. 그 청년이 30세에 상점가동맹 초대회장이 됐고, 재일교포 341명이 모은 250억 원으로 신한은행을 창업해 109년 역사의 조흥은행을 인수하기까지의 여정은 한국 금융사의 압축된 드라마다.창업 스토리1917년 경북 경산에서 태어난 이희건 회장은 1932년 15세의 나이로 일본 오사카로 건너갔다. 광복 후에는 쓰루하시역 앞 무허가 시장에서 자전거 타이어를 팔며 생계를 이었다. 1946년 일본 경찰이 이 시장을 폐쇄했다. 재일 한국인들의 경제 기반을 차단하려는 조치였다. 이희건은 재일 한국인을 대표해 각계에 시.. 2026. 5. 14.
[투자일기] 행정고시 차석 합격 후 임용 취소 — 그래서 KB금융 5조 순이익 신화가 생겼다 KB금융 윤종규 전 회장은 행정고시 필기시험에서 차석으로 합격했다. 그러나 대학 시절 시위 참여 경력을 이유로 임용이 취소됐다. 진실화해위원회는 2008년 이 사건을 '잘못된 처리'로 결론 내렸다. 그가 공직에 입문했다면 KB금융의 5조 원 순이익 신화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창업 스토리KB금융의 뿌리는 두 개의 국책은행이다. 1963년 설립된 국민은행은 서민금융 전담 기관이었고, 1967년 설립된 주택은행은 주택 공급을 목적으로 한 특수목적 은행이었다. 실질적 전환점은 1995년 민영화였다. 정부 소유에서 민간으로 이전되며 현재 KB금융의 출발점이 형성됐다.성장과 위기KB금융의 운명을 바꾼 것은 1997년 외환위기였다. 국가적 재난이 오히려 성장의 계기가 됐다. 1998년 주택은행은 동남은행을, .. 2026. 5. 13.
[투자일기] 컨테이너 세계1위에서 자동차 부품 세계3위로 — 현대모비스가 걸어온 48년 현대모비스를 자동차 부품회사로만 알고 있다면 이 기업의 절반밖에 모르는 셈이다. 출발점은 자동차 부품이 아니라 컨테이너였다. 요트를 만들고 헬기를 제작했으며, 정주영 회장이 서산 간척지에서 사용한 해류 차단용 선박까지 제조한 회사가 지금의 현대모비스다.창업 스토리1977년, 정몽구가 아버지 정주영에게 경영 능력을 증명하겠다는 의지로 시작한 회사가 현대정공이다. 원래 이름은 '고려정공주식회사'였으나 1976년 설립 등기 후 현대정공으로 변경됐다. 자본금 2,500만 원으로 컨테이너와 H빔을 생산하며 출발했다. 단순 컨테이너로는 중국산에 밀릴 것으로 판단해 냉동컨테이너 등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방향을 잡았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창업 4년 만인 1980년 세계 1위 컨테이너 업체로 올라서며 1억 달러 수출의 .. 2026. 5. 12.
[투자일기] 9분에 80% 충전 — 파나소닉·CATL이 포기한 전고체를 삼성SDI가 혼자 간다 삼성SDI라는 이름에는 기묘한 비밀이 숨어 있다. 'SDI'는 원래 'Samsung Display Interface'의 줄임말이었지만, 정작 지금은 디스플레이 사업과 전혀 무관한 회사가 됐다. 회사 측이 "고유명사 SDI"라고 홍보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기업이 얼마나 근본적인 변신을 거쳤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창업 스토리1970년, 삼성전자공업이 일본전기(NEC)와 합작해 삼성-NEC를 설립했다. 고 이병철 회장이 "브라운관 TV는 국산화해야 한다"는 목표를 내걸고 추진한 강한 의지의 결과물이었다. 당시 국내 전자산업은 중간 부품 조립 수준을 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불모지에서 삼성-NEC는 1970년 10월 3억여 원을 투자해 흑백 브라운관 공장 건설에 착수했고, 같은 해 12월 5일 첫 생산에.. 2026. 5. 11.
[투자일기] 덩샤오핑이 "박태준을 수입하겠다"고 했다 — 포스코 창업자의 진짜 이야기 1978년 중국의 덩샤오핑이 일본 제철소를 시찰한 뒤 "중국에 이런 제철소를 지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일본 회장은 "불가능하다"고 답했고, 그 이유를 묻자 "중국에는 박태준이 없지 않으냐"는 말이 돌아왔다. 덩샤오핑은 "그렇다면 박태준을 수입하면 되겠군요"라고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 박태준은 포스코 창업자임에도 포스코 주식을 단 한 주도 받지 않았으며, 말년 병원비를 자녀들이 대신 낼 만큼 재산을 남기지 않은 인물이었다.창업 스토리박태준(1927~2011)은 부산 기장군의 작은 어촌에서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운명적 만남은 군 시절부터 시작됐다. 1948년 남조선경비사관학교에 입교했을 때 제1중대장이 박정희 대위였다. 수학 실력이 남다른 박태준이 그의 눈에 띄었고, 이때부터 두 사람의 .. 2026. 5. 9.
[투자일기] 카카오톡 창업자가 한때 PC방 사장이었다 — 단칸방에서 국민 메신저까지 카카오톡을 쓰지 않는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려운 시대다. 대한민국 국민 메신저로 자리잡은 카카오톡의 창업자 김범수가 한때 PC방 사장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IMF 직후 자금난에 허덕이던 시절 그가 선택한 돌파구가 바로 PC방 창업이었으며, 그 경험이 훗날 한게임의 성공 비결로 이어졌다.창업 스토리김범수는 1966년 전남 담양의 가난한 농촌 가정에서 태어났다. 일곱 식구가 단칸방에서 살아야 할 만큼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가족 중 유일하게 대학에 진학했다.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뒤 삼성SDS에 입사해 현 NHN의 이해진 의장과 동기로 일했다. 1994년 PC통신 서비스 '유니텔' 개발에 참여하며 기술 개발부터 기획·설계·유통까지 거의 모든 영역을 담당했다. 그러나 1998년 돌연 사표를.. 2026. 5.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