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투자31 [투자일기] 거북선 그림으로 4,300만 달러 빌렸다 — 조선소도 없이 배 먼저 만든 회사 1971년 런던, 한 한국인이 영국 바클레이스 은행 관련자 앞에서 500원짜리 지폐를 꺼내들었다. 지폐에는 거북선이 그려져 있었다. "한국은 이미 16세기에 철갑선을 만들었습니다." 이 한 마디로 4,300만 달러 차관을 따낸 인물이 정주영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조선소도 없이 배를 먼저 만들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1972년 울산 미포 황무지에서 조선소 건설과 첫 선박 건조를 동시에 시작해 1974년 조선소 준공식과 선박 인도식을 같은 날 치렀다.창업 스토리정주영은 1915년 강원도 통천군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19세에 경성으로 상경해 막노동부터 시작했다. 쌀가게 배달원으로 일하다 특유의 성실함으로 6개월 만에 장부 정리까지 맡게 됐다. 1938년 주인으로부터 가게를 인수해 '경일상회'를 .. 2026. 5. 16. [투자일기] 용기 뚜껑이 깨져서 전 재산 걸었다 — 동동구리무에서 세계 15위 LG화학까지 LG화학 하면 배터리나 석유화학이 먼저 떠오르지만, 이 회사의 시작은 1947년 부산 서대신동 자택에서 여성용 크림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름은 '동동구리무'. 행상들이 북을 두 번 치고 다녔기 때문에 '동동', 크림의 일본식 발음 '구리무'가 합쳐진 이름이었다. 미국 여배우를 모델로 내세운 마케팅 덕분에 중국 상하이에서 들어온 외제품이라는 소문까지 돌았다. 그러나 진짜 반전은 크림 용기 뚜껑이 자꾸 깨져서 항의가 빗발치면서 시작됐다. 창업자 구인회는 전 재산을 걸고 미국에서 사출성형기를 들여왔고, 1952년 국내 최초의 플라스틱 빗을 만들어냈다.창업 스토리연암 구인회는 원래 진주에서 포목상을 운영하던 사업가였다. 1931년 구인회상점으로 시작해 1940년에는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무역업으로 사업을 키웠다... 2026. 5. 15. [투자일기] 오사카 자전거 타이어 장사 → 재일교포 341명 250억 → 109년 조흥은행 인수 신한지주 하면 1982년 은행 창업 스토리가 먼저 떠오르지만, 창업주 이희건 명예회장의 출발점은 전혀 달랐다. 1945년 광복 후 오사카 쓰루하시역 앞 무허가 시장에서 자전거 타이어를 팔던 청년이었다. 그 청년이 30세에 상점가동맹 초대회장이 됐고, 재일교포 341명이 모은 250억 원으로 신한은행을 창업해 109년 역사의 조흥은행을 인수하기까지의 여정은 한국 금융사의 압축된 드라마다.창업 스토리1917년 경북 경산에서 태어난 이희건 회장은 1932년 15세의 나이로 일본 오사카로 건너갔다. 광복 후에는 쓰루하시역 앞 무허가 시장에서 자전거 타이어를 팔며 생계를 이었다. 1946년 일본 경찰이 이 시장을 폐쇄했다. 재일 한국인들의 경제 기반을 차단하려는 조치였다. 이희건은 재일 한국인을 대표해 각계에 시.. 2026. 5. 14. [투자일기] 행정고시 차석 합격 후 임용 취소 — 그래서 KB금융 5조 순이익 신화가 생겼다 KB금융 윤종규 전 회장은 행정고시 필기시험에서 차석으로 합격했다. 그러나 대학 시절 시위 참여 경력을 이유로 임용이 취소됐다. 진실화해위원회는 2008년 이 사건을 '잘못된 처리'로 결론 내렸다. 그가 공직에 입문했다면 KB금융의 5조 원 순이익 신화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창업 스토리KB금융의 뿌리는 두 개의 국책은행이다. 1963년 설립된 국민은행은 서민금융 전담 기관이었고, 1967년 설립된 주택은행은 주택 공급을 목적으로 한 특수목적 은행이었다. 실질적 전환점은 1995년 민영화였다. 정부 소유에서 민간으로 이전되며 현재 KB금융의 출발점이 형성됐다.성장과 위기KB금융의 운명을 바꾼 것은 1997년 외환위기였다. 국가적 재난이 오히려 성장의 계기가 됐다. 1998년 주택은행은 동남은행을, .. 2026. 5. 13. [투자일기] 컨테이너 세계1위에서 자동차 부품 세계3위로 — 현대모비스가 걸어온 48년 현대모비스를 자동차 부품회사로만 알고 있다면 이 기업의 절반밖에 모르는 셈이다. 출발점은 자동차 부품이 아니라 컨테이너였다. 요트를 만들고 헬기를 제작했으며, 정주영 회장이 서산 간척지에서 사용한 해류 차단용 선박까지 제조한 회사가 지금의 현대모비스다.창업 스토리1977년, 정몽구가 아버지 정주영에게 경영 능력을 증명하겠다는 의지로 시작한 회사가 현대정공이다. 원래 이름은 '고려정공주식회사'였으나 1976년 설립 등기 후 현대정공으로 변경됐다. 자본금 2,500만 원으로 컨테이너와 H빔을 생산하며 출발했다. 단순 컨테이너로는 중국산에 밀릴 것으로 판단해 냉동컨테이너 등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방향을 잡았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창업 4년 만인 1980년 세계 1위 컨테이너 업체로 올라서며 1억 달러 수출의 .. 2026. 5. 12. [투자일기] 9분에 80% 충전 — 파나소닉·CATL이 포기한 전고체를 삼성SDI가 혼자 간다 삼성SDI라는 이름에는 기묘한 비밀이 숨어 있다. 'SDI'는 원래 'Samsung Display Interface'의 줄임말이었지만, 정작 지금은 디스플레이 사업과 전혀 무관한 회사가 됐다. 회사 측이 "고유명사 SDI"라고 홍보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기업이 얼마나 근본적인 변신을 거쳤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창업 스토리1970년, 삼성전자공업이 일본전기(NEC)와 합작해 삼성-NEC를 설립했다. 고 이병철 회장이 "브라운관 TV는 국산화해야 한다"는 목표를 내걸고 추진한 강한 의지의 결과물이었다. 당시 국내 전자산업은 중간 부품 조립 수준을 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불모지에서 삼성-NEC는 1970년 10월 3억여 원을 투자해 흑백 브라운관 공장 건설에 착수했고, 같은 해 12월 5일 첫 생산에.. 2026. 5. 11. 이전 1 2 3 4 5 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