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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투자80

[투자일기]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 — 준비된 새우는 정말로 삼킬 수 있었다 1980년, 섬유회사로만 알려진 선경(SK 전신)이 자신보다 수백 배 큰 대한석유공사를 인수하자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는 말이 나돌았다. 그러나 준비된 새우는 정말로 고래를 삼킬 수 있었다. 두 차례 석유파동 때 사우디 왕실과의 인맥으로 한국 전체가 필요한 원유를 공급했던 실력이 있었기 때문이다.창업 스토리1953년 10월,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수원 평동에 작은 직물회사가 문을 열었다. 27세 청년 최종건이 빚까지 내며 인수한 선경직물이 바로 SK이노베이션의 출발점이다. 최종건은 1944년 경성직업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인이 운영하던 선경직물에 견습기사로 입사해 입사 2년 만에 생산부장까지 승진했다. 해방 후 미군정이 공장을 적산으로 지정하자 관리인으로 남았고, 1953년 마침내 인수 기회를 잡았다. .. 2026. 6. 5.
[투자일기] 1936년 마산 정미소 자본금 3만원 → 88년 뒤 삼성그룹 실질 지주회사 삼성의 진짜 시작은 반도체도 스마트폰도 아니었다. 1936년 마산의 작은 정미소, 자본금 3만 원으로 시작한 '협동정미소'가 88년 후 42조 원 매출을 올리는 삼성물산의 출발점이었다. 첫 1년 반은 완전히 망해가던 사업이었다는 점이 더욱 흥미롭다.창업 스토리이병철은 의령의 천석꾼 집 막내로 태어났다. 1934년 어느 날 밤, 밤새 도박을 하고 집에 돌아온 이병철이 평화롭게 잠든 자식들을 보며 각성했다. 아버지에게 사업 자금을 요청해 연 수확 300석 규모의 땅을 밑천으로 받아 1936년 마산에 정미소를 차렸다. 그러나 첫 사업은 완전히 망했다. 쌀값이 오르면 따라 사고 내리면 따라 파는 군중심리에 빠진 것이 문제였다. 1년 만에 자본금의 3분의 2가 날아갔다. 그때 깨달은 것이 '남들과 반대로 해야 한.. 2026. 6. 4.
[투자일기] 탄피 팔아 번 돈으로 설탕공장 지었다 — 1953년 전쟁터에서 비비고까지 CJ제일제당 하면 백설표 설탕이나 다시다를 떠올리기 쉽지만, 이 회사가 탄피를 고철로 팔아 번 돈으로 시작됐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국민 브랜드 '백설'이 1964년 사내 공모에서 영업과 여사원 김구혜 씨의 아이디어였다는 점도 흥미롭다. 삼성 창업 때부터 69년간 무노조 정책을 고수하다가 2022년에야 처음 노조가 생긴 기업이기도 하다.창업 스토리이병철 회장은 1953년 부산에서 제일제당공업을 세우며 "생필품을 수입에만 의존해선 안 된다"고 다짐했다. 창업 자금의 출처가 흥미롭다. 1951년 삼성물산이 한국전쟁 때 탄피를 고철로 수출해서 번 돈이었다. 전쟁의 폐허에서 탄피를 팔아 모은 돈으로 설탕공장을 지은 것이다. 5개월간의 시행착오 끝에 1953년 11월 5일 우리나라 최초의 설탕 6,3.. 2026. 6. 3.
[투자일기] 막내가 받은 가장 작은 조각이 20년 만에 116조가 됐다 — 메리츠금융지주 종목 공부 2025년 3월, 메리츠금융지주 조정호 회장의 주식 평가액이 12조 4,334억 원을 기록하며 4년간 부동의 1위였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제쳤다. 조정호는 한진그룹 창업주의 넷째 막내아들로, 2005년 계열분리 당시 가장 작은 금융계열사를 물려받은 인물이다. 당시 그가 물려받은 것은 총자산 3조 3,000억 원 규모의 한진투자증권과 동양화재가 전부였다. 형들이 항공·해운·중공업 등 화려한 계열사를 나눠가질 때 막내는 가장 작은 조각을 받았다. 20년이 지난 지금 그 조각은 116조 원 규모로 성장했다.창업 스토리조정호(1958년생)는 한진그룹 창업주 조중훈의 막내아들이다. 큰 형 조양호와 9살 차이가 나는 늦둥이로, 미국 유학 시절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졸업한 보스턴의 대처고등학교를 나왔다. .. 2026. 6. 2.
[투자일기] 금융위원장 앞에 반바지로 나타났다 — 카카오뱅크는 처음엔 카카오 은행이 아니었다 2017년 여름, 금융위원장이 참석한 공식 미팅에 반바지를 입고 나타난 직원들이 있었다. 한국 금융계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카카오뱅크에서는 당연한 풍경이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카카오뱅크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실제로는 한국투자금융지주가 주도해서 만든 은행이었다는 점이다. 출범 후 3개월 만에 4조 2,000억 원을 모은 전무후무한 기록의 주인공이기도 하다.창업 스토리카카오뱅크의 진짜 아버지는 김범수가 아니다. 설립 당시 주주사는 총 9곳이었고, 금산분리법 때문에 이름만 카카오일 뿐 지분의 58%를 한국투자금융지주가 보유하고 있었다. 카카오는 고작 10%였다. 즉 카카오뱅크는 처음에는 한국투자금융지주의 은행이었다. 김범수는 전라남도 담양의 서민층 집안에서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모.. 2026. 6. 1.
[투자일기] 1902년 5세 영친왕이 세계 최연소 은행장이 됐다 — 126년 뒤 우리금융지주 1902년, 겨우 5세였던 영친왕이 은행장에 임명됐다. 고종의 7남 이은이 대한천일은행 제2대 은행장직을 맡게 된 것은 황실이 16주를 인수하며 대주주가 됐기 때문이었다. 세계 금융사상 최연소 기록에 해당하는 이 기묘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로 우리금융지주의 뿌리다. 126년 전 대한제국 시절부터 시작된 이 회사는 지금도 매년 1월 1일 임원진이 홍유릉을 찾아 고종황제와 영친왕에게 참배를 올린다.창업 스토리1899년 고종황제가 직접 나섰다. 일본 은행들이 조선 땅에 우후죽순 생겨나자 '우리 것'이 필요했다. 고종은 황실 예산인 내탕금 3만 원을 내놓으며 대한천일은행 설립을 지시했다. 현재 가치로 약 60억 원 규모였다. 창립 정관에는 "조선 사람 이외에는 대한천일은행의 주식을 사고팔 수 없다"고 명시했다... 2026. 5.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