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64 [투자일기] 금융위원장 앞에 반바지로 나타났다 — 카카오뱅크는 처음엔 카카오 은행이 아니었다 2017년 여름, 금융위원장이 참석한 공식 미팅에 반바지를 입고 나타난 직원들이 있었다. 한국 금융계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카카오뱅크에서는 당연한 풍경이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카카오뱅크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실제로는 한국투자금융지주가 주도해서 만든 은행이었다는 점이다. 출범 후 3개월 만에 4조 2,000억 원을 모은 전무후무한 기록의 주인공이기도 하다.창업 스토리카카오뱅크의 진짜 아버지는 김범수가 아니다. 설립 당시 주주사는 총 9곳이었고, 금산분리법 때문에 이름만 카카오일 뿐 지분의 58%를 한국투자금융지주가 보유하고 있었다. 카카오는 고작 10%였다. 즉 카카오뱅크는 처음에는 한국투자금융지주의 은행이었다. 김범수는 전라남도 담양의 서민층 집안에서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모.. 2026. 6. 1. [투자일기] 1902년 5세 영친왕이 세계 최연소 은행장이 됐다 — 126년 뒤 우리금융지주 1902년, 겨우 5세였던 영친왕이 은행장에 임명됐다. 고종의 7남 이은이 대한천일은행 제2대 은행장직을 맡게 된 것은 황실이 16주를 인수하며 대주주가 됐기 때문이었다. 세계 금융사상 최연소 기록에 해당하는 이 기묘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로 우리금융지주의 뿌리다. 126년 전 대한제국 시절부터 시작된 이 회사는 지금도 매년 1월 1일 임원진이 홍유릉을 찾아 고종황제와 영친왕에게 참배를 올린다.창업 스토리1899년 고종황제가 직접 나섰다. 일본 은행들이 조선 땅에 우후죽순 생겨나자 '우리 것'이 필요했다. 고종은 황실 예산인 내탕금 3만 원을 내놓으며 대한천일은행 설립을 지시했다. 현재 가치로 약 60억 원 규모였다. 창립 정관에는 "조선 사람 이외에는 대한천일은행의 주식을 사고팔 수 없다"고 명시했다... 2026. 5. 30. [투자일기] '겜알못'이 만든 게임이 개발비 700배 수익을 냈다 — 크래프톤 종목 공부 2조 원대 주식부자가 된 게임업계 거물이 스스로를 '겜알못'이라고 부른다. 크래프톤 장병규 의장의 이야기다. 창업 동기는 게임에 대한 열정이 아니라 냉철한 비즈니스 판단이었다. "게임과는 관련이 없는 사람이지만 게임 사업이 굉장히 글로벌한 비즈니스이기에 시작했다"는 것이 본인의 말이다. 더 놀라운 것은 크래프톤이 한때 카카오의 자회사가 될 뻔했다는 사실이다. 2016년 말 카카오 이사회가 블루홀(크래프톤 전신) 인수를 거절했고, 만약 승인됐다면 배틀그라운드는 카카오게임이 됐을지도 모른다.창업 스토리2007년 3월 26일, 장병규가 엔씨소프트에서 리니지2를 성공시킨 박용현 팀과 함께 블루홀스튜디오를 창업했다. 장병규는 이미 네오위즈 창업과 검색엔진 '첫눈' 매각으로 1,000억 원대 자산을 형성한 청년 자.. 2026. 5. 29. [투자일기] 흑자 13조인데 부채도 206조 — 하루 이자 119억을 내는 한국전력 종목 공부 한국전력만큼 극적인 역설을 품은 기업도 드물다. 1887년 조선 경복궁 건청궁에 아시아 최초로 전등이 켜졌다. 에디슨이 백열전구를 발명한 지 불과 8년 만에, 중국과 일본보다 2년 빠른 동양 최초의 전기 도입이었다. 2025년 창사 이래 최대 흑자 13조 원을 기록했지만, 부채는 206조 원으로 역대 최대가 됐다. 하루 이자만 119억 원을 내는 이 거대한 역설의 뿌리를 살펴본다.창업 스토리모든 것이 1883년 보빙사로부터 시작됐다. 민영익을 전권대사로 한 11명의 사절단이 미국 체스터 아서 대통령을 만나고 에디슨 전등회사를 견학했다. 에디슨이 전등을 발명한 지 4년 만의 일이었다. 고종황제는 사절단 보고를 받고 전등 설치를 허가했다. 3개월 후 에디슨 사에 공식 발주하며 아시아 진출을 노리던 에디슨과 .. 2026. 5. 28. [투자일기] 전 세계 상표도둑이 역공하자 이름을 바꿨다 — GoldStar에서 LG가 된 이야기 1990년대 LG전자(당시 금성사)가 해외 진출을 시도하자 전 세계 '상표도둑'들이 역공을 가했다. 각국 사업가들이 GoldStar와 유사한 이름으로 유령회사를 등록해 상표권 사용료를 요구했고, 중국에서는 金星 대신 발음이 비슷한 '高士達(가오스다)'까지 등록됐다. 미국에서는 'GoldStar'가 전사한 군인을 뜻하는 말이어서 Lucky Gold Star가 '잘 죽었다'는 조롱처럼 들릴 수 있었다. 결국 LG는 새 이름을 만들어 전 세계에 등록하는 강수를 뒀다.창업 스토리LG전자의 뿌리는 1958년 구인회가 설립한 '금성사'다. 1907년 경남 진주 출생인 구인회는 이미 '럭키크림'으로 성공을 거둔 락희화학의 사장이었다. 모든 사람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의미로 'Lucky'를 음차해 회사 이름을 '락희'로.. 2026. 5. 27. [투자일기] 아무도 원하지 않는 유조선 3척이 시작이었다 — 오일쇼크 위기가 HMM을 만들었다 1976년 제1차 오일쇼크로 유조선 운송량이 급감했을 때, 현대중공업이 건조한 초대형 유조선 3척을 발주처가 인수하길 거부했다. 정주영 회장이 내린 결단은 남겨진 3척으로 새로운 해운회사를 만드는 것이었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 배 3척이 오늘날 시총 18조 원 HMM의 시작이었다. 1998년 HMM이 분단 이후 처음으로 금강산 관광선 운행을 시작한 주역이기도 했다.창업 스토리1976년 3월, 현대중공업이 출자해 아세아상선으로 설립된 회사가 HMM의 전신이다. 오일쇼크로 유가가 폭등하며 발주처들이 완성된 선박 인수를 거부하자 정주영 회장은 이 위기를 기회로 전환했다. 남겨진 초대형 유조선 3척으로 해운회사를 창업한 것이다. 1983년 현대상선으로 사명을 변경하고 신한해운을 비롯한 여러 해운사를 인수·합병하.. 2026. 5. 26. 이전 1 ··· 3 4 5 6 7 8 9 ··· 11 다음